예수와 가야바(33)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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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560회 작성일 24-03-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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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1. 예루살렘 교회의 삶의 모습을 보자.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행 2: 44-47, 참고, 행 4: 32-35).

 1)  이들은 종말의 비상체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행 4: 36-37).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팔아서 내어 놓았지만, 동료들을 향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임이 드러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행 5: 1-10).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라면서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그는 복받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된다.

 2)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개교회적 이기주의다. 사람들은 개교회적 이기주의가 얼마나 나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웃 교회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웃 교회의 교인들을 흡수하고 나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간증한다면 어떻게 될까? 교인쟁탈전 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와 욕심에 잠식된 모습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겸손하게, 그리고 함께 섬기는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3)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교회의 건물과 재정도 없고, 교회에 힘있고 돈 많은 사람도 없고, 아직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때에, 가장 복음전파가 활발히 일어났다.  박해는 점점 심해졌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행 12: 24, 행 19: 20). 예수가 생각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시적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2. 바울의 편지를 보자.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고전 7: 29-31).

 1)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군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격려한다.  종말이 다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디모데에게도 동일한 어조로 말한다. “너는 예수의 군인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따라서 군인은 살림살이에 메이지 않아야 한다”(딤후 2: 4). 그 때까지 하나님의 축복은 유보된다. 전쟁이 승리로 끝난 뒤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2) 그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을 살려고 애썼다. 예수의 부활과 재림이 그들의 삶의 동기와 목표가 되었다. 물론 연기된 재림(deferred second-coming)으로 인하여 교회안에서 다른 혼란도 일어났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삶이 예수의 부활로 동기부여 되었고, 예수의 재림으로 목표지향적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이 크리스찬의 삶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되어야 한다.


          II.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1.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해?

 1)  오늘의 크리스찬의 삶의 모습은 예수를 닮은 것도 아니고, 초대교회를 닮을 것도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럴까? 아마도 그 이면에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는가”라는 강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렇게 살았고, 그들도 그렇게 살았지만, 그러나 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 때는 박해의 시대였고, 예수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살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는가?

 2) 바로 여기에 예수와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간에 간격이 생긴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처럼 살기는 싫다”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보면, “예수처럼 살지 않으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오늘 날, 이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것은 예수를 구주(Savior)로서만 믿지만, 주(Lord)로서는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신앙은 가짜 신앙이요, 위선적이다.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2. 우리는 여전히 종말의 비상체제 속에 살고 있다.

 1)  베드로의 편지를 보자.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 3: 9).
 
    예수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따라서 재림의 지연을 조롱하거나, 태만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서 더욱 복음전파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경고 및 격려의 말씀이다.
 
  2)  예수의 경고를 보자
 
    “그러나 그가 나쁜 종이어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주인이 늦게 오시는구나' 하면서,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생각하지도 않은 날에, 뜻밖의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 종을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마 24: 48-51).
   
    주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수의 재림이 지연될수록 나쁜 종들(악한 종들)이 많이 생길 것을! 누가 나쁜 종일까? 예수의 재림이 늦어진다고, 방만하게 사는 종이다. 이들은 천국에서 제외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마 24: 43).

  3) 오늘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오늘 교회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종말의 비상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쁜 종들(악한 종들)이 “천천히, 안정적으로, 그리고 즐겁게”를 외치고 있다. 이런 교회 문화가 온 세상의 교회를 덮고 있다. 이제 예수가 다시 오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듯이 살고 있다.  아직도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일이 남아 있는데(마 24: 38), 지금 오면 곤란하다는 듯이 살고 있다. 크리스찬들은 환각제에 취한 사람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주전자 속의 개구리처럼'(the frog in the kettle) 부지불식간에 죽어가고 있다.


              III.  예수의 위치를 되찾아야 한다.
   
 1.  예수는 우리의 주인이다

1) 예수는 우리 신앙의 “창시자요 완성자(the author and perfecter)”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의 가르침에 절대 순종하고, 그의 삶의 발자취를 어김없이 따라야 한다. 오늘의 문제점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예수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2) 만약 예수의 가르침이 구약의 가르침과 다르게 보여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예수는 이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모세의 율법에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주고 이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음행한 일도 없는 아내를 내보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마 5: 31-32). 구약의 율법을 뒤집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의 진수를 끄집어내서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3) 구약에서 율법을 주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다. 유대인들에게 그 율법을 다시 해석하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종말의 시대에서, 율법의 참된 정신에 따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 예수는 하나님의 최종 계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 1-3a).
 
 1) 역사의 종말에 "아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명백하게 계시하셨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최종 계시(the final revelation)다. 이는 예수의 말씀과 삶을 신앙의 가장 완전한 버전(version)으로 여기고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날 교회안에서 왕왕 예수의 말씀과 삶보다 구약의 사건을 우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제까지 언급한 복에 관한 예가 바로 그것이다.

2) 예수가 헌신의 제자도를 가르쳤으면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구약의 삶과 신약의 삶은 예수가 말한 것처럼 확연하게 달라야 한다.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세례요한이었다. 그렇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보다는 크다"(마 11: 11). 즉 예수가 주인공이 되는 신약 시대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그만큼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신약 시대의 최고의 복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기복신앙은 왜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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