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32) 예수가 가르친 복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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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792회 작성일 24-03-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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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예수는 왜 희생과 헌신을 강조했을까?

      위의 글에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복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복을 받은 자의 막중한 사명을 강조했지만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또한 그 복은 대단히 현세적이었다. 그렇지만 메시야로 오신 예수는 구약에서 약속한 복을 전혀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과 헌신의 제자도를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II.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오시면서 인류의 역사는 종말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종말을 향한 비상체제가 되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1. 첫째,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예수의 구원은 심판을 동반한다. 심판이 없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성격이 그렇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을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기간은 정해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예수가 재판장으로 다실 때 까지다. 개인적으로는 죽을 때 까지다. 이제 종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2. 둘째, 사람들의 선택을 위하여 예수는 복음을 선포했다. 복음은 '어떤 선택을 해야 심판을 받지 않고 사는 길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문이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 1:14, 새번역).

 1)  여기서의 때(καιρός, kairos)는 인류의 역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때가 찼다”는 말은 새로운 일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고,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때가 차서” 제일 먼저 시작된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갈 4: 4).
 
 2)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는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신다. 이제까지 이 세상을 지배하던 왕, 사탄이 거꾸러지고 메시야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선다. 따라서 선택해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메시야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면 구원을 받는다.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3)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종말(eschaton)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가던 길을 돌이켜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는 삶의 방향전환(metanoia)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εὐαγγέλιον, goodnews)이다.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는 최고의 희소식이다.


                III.    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수의 오심으로 구약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복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종말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고, 유보된다. 

  1. 첫째, 복의 의미가 재해석된다.
 
 1)  예수가 가르친 팔복(the beatitudes)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구약의 복은 영적인 복을 포함하면서도 현세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예수가 외친 복은 현세적인 측면, 즉 “잘 먹고 살 산다”는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복”으로 번역된 헬라어,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 makarios)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복(福)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일본어 번역들은 “행복하다(幸い)”고 번역했다. 이 말도 정확한 의미의 전달은 되지 못한다.
   
 2)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도 가난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마음의 가난)이 복이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 하늘 나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난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수단이요 통로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요, 돈과 권련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심판받아 불못(the lake of fire)에 떨어진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가난은 최고의 복이 된다.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다. 그렇지만 박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뿐더러, 하늘의 큰 상을 받는다. 세상의 어떤 임금도 부자도 얻을 수 없는 복이다. 그래서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 따라서 예수가 소개한 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이다.

 3) 바울은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이러한 복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복을 받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며 과정”이다. 따라서 장차 받을 영광된 축복에 비하여 지금의 고난은 오히려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후 4: 17). 그는 자신도 예수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크리스찬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고 있다.  즉 고난은 곧 축복이다. 따라서 고난을 거부하지 말고 소망으로 고난을 돌파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다.


  2. 둘째, 약속된 복이 유보(留保)된다. 

 1) 구약에서 약속된 모든 복은 예수가 다시 오실 때까지 잠정적으로 유보된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보자.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이나 땅을 버린 사람은, 백 배나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것이다’ ”(마 19: 27-29)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영원한 생명을 물론이며, 지금 포기한 것의 백배나 받는다. 나아가서 왕이 된다. 이러한 보상은 베드로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복이며, 영원한 복이다. 따라서 현세에서의 헌신은 받을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울의 말처럼,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롬 8: 18).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는 참아야 한다.

 2) 히브리서의 가르침도 동일하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 6). 그렇지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현세에서는 받지 못 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삶은 힘들었고, 힘든 삶을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도 그렇게 살았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 12: 2-3).


          IV.    부활이 열쇠다.
   
    그렇다면 예수처럼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바울은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확신하면서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전 15: 17-19).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면 기독교는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크리스찬들은 예수 안에서 예수처럼 영광의 부활로 나아간다. 그리고 부활의 주, 예수는 다시 오신다. 따라서 크리스찬들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고난을 복으로 바꾸면서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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