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31) 하나님의 복은 관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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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05회 작성일 24-03-2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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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신명기의 축복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충실히 지키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여러분이 가정에서도 복을 받고 일터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자손이 번성하고 농사가 잘 되고 가축이 증식하며, 먹을 것이 풍성할 것입니다”(신 28: 1-6).
 
  1.  이 귀절에서도 복을 받는 당사자는 개인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이다. 이들에게 복을 주시는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복의 최종 수혜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드디어 모든 민족으로 확대시키기 위함이다. 만약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여 하나님의 복을 가두어 놓거나, 다른 민족을 차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에게 주어졌던 선민의 지위도 축복도 박탈당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약속의 땅에서도 쫓겨난다. 


  2. 신명기는 사회정의 (social justice) 를 강조한다. 사회정의의 핵심은 분배정의(distributive justice)다. 모든 민족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 자체내에서 의식주, 인권, 및 기회의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당신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당신들이 참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신 15:4).

 1)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힘을 갖는 능력이 동일하지 않다. 그냥 두면 끝도 없이 차별이 깊어 간다. 아무리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암송해도,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할지 몰라도 굶주린 사람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을 뿐이다.

 2) 그래서 신명기는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안식년과 희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십일조, 약자에 대한 차별금지법, 나아가서 심지어 추수할 때도 남겨두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억울한 약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뜻이다.  “거룩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보호자이시다”(시 68: 5).

 3)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십시오”(신 25: 4).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이런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야 한다. 주변의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넘쳐 흘러가야 한다.


  3. 나아가서 신명기는 회복적 정의를 강조한다.
 
 1) 신명기는 공평한 분배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강조한다.
   
      “그리고 과부의 옷을 담보물로 잡아서는 안 됩니다”(신 24: 17). 

    과부라도 돈을 갚지 못하면 옷이라도 담보물로 잡는 것이 법의 공정한 집행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과부는 옷을 저당잡힌 그 날 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정한 재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수술은 했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사람을 죽이는 정의가 아니라 살리는 정의가 되어야 한다.

 2) 다음의 귀절을 보자.

    “그러나 40대 이상 때려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 때리게 되면 여러분의 동족이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신 25: 1-3).

    남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법대로 처벌을 하는 것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40 대 이상의 곤장을 때리게 되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인격이 망가질 수 있다. 정의는 실현되었지만,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평생의 상처가 된다. 법은 사람과 사회를 회복시키려고 존재한다.

  3) 신명기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개인과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신약에서 간음한 여자를 보고, 예수가 어떻게 그 여자를 회복시켰는지와 일치하고 있다.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더 큰 정의가 있을까?

 
          II. 복은 관계적이다.

  1.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오복(五福)을 말해 왔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섯 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고, 이 중에서 하나라도 얻은 사람을 보고 복을 받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부유하게 사는 것이 복이다.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복을 받은 사람이고,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성경에는 이런 가치관이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복을 독립적인 실체(independant reality)로 보지 않고 상호의존적인 실체(interdependant reality)로 본다. 돈 그 자체는 복도 아니고 화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돈을 많이 벌었어도, 그 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그의 돈은 전혀 복이 되지 않고, 그 돈을 가진 그 사람도 전혀 복 된 사람이 될 수 없다.
   
    돈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돈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문제되는 것이다. 의사의 손에 들린 칼이 사람을 살리는 수단이 된다면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 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성경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고 경고한다(딤전 6:10). 실제로 자신의 인생과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 그래서 구약에서 “복”(blessing)이라는 개념은 명사가 아닌 동사의 형태로 쓰여진다. 앞에서도 언급한 제사장의 축복(민 6: 23-27)에서, “축복하다(barak)”는 동사의 의미는 “무릎을 꿇다”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받은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이런 마음도 없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받은 복이라도 결코 복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복은 관계를 바르게, 풍성하게, 그리고 활력을 주는데 사용되어야만 제 역할을 감당한다.
   
  4. 복에 대한 구약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더욱 일관성 있게 강조된다. 예수의 비유를 들어 보자. 어떤 부자가 농사가 너무 잘 되어서 창고를 더 넓혀서 곡식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편히 쉬고 먹고 즐길 것이다”고 결심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인간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너희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눅 12: 16-21).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범죄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번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목숨을 거둘 정도로 진노하실까? 하나님의 주신 것으로 돈을 벌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즉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올바른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크리스찬들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어한다. 예수는 이 사람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했다.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III. 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은가?

  1.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 다른 데서 복을 받을 수도 없지만, 받아서도 안 된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복만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

  2.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돈, 힘, 그리고 명예는 그 자체로는 절대로 복이 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하나님과 관계, 이웃과의 관계속에서의 쓰임새에 따라,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다. 복이 되도록 쓰면 나도 복된 사람이 되지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나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기 전에, 다음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복을 받으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받은 복을 가지고 하나님및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더욱 발전시켜 나아갈까? 

  3. 다시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어 하는가? 그렇다면 복을 받은 다음에 예수처럼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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