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30)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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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887회 작성일 24-03-24 18:24본문
I.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가?
1. 앞의 글에서 예수는 축복 대신 헌신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렇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복이라면서 강조한 것’도 사실은 헌신이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The Beatitudes)이 바로 그러하다. 팔복의 내용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로 시작해서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로 끝이 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과는 전혀 반대다.
2.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장 먼저 복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영적인 복만이 아니라, 물질과 힘, 그리고 명성까지 받았다. 민수기 6장의 내용은 누구나가 좋아하는 하나님의 축복 선언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다음의 말로 복을 선포하면 그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 마다 이 축복문을 읽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기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너에게 자비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인자하게 너를 바라보시며 너에게 평안을 주시기 원하노라”(민 6: 24-26).
3. 그러나 예수는 축복의 약속을 뒤집었다. 자신이 구약에서 이처럼 복을 약속해 놓고, 신약에서는 전혀 얼굴을 바꾸어서 헌신을 명령하셨다? 그래서 오늘 날, 강단의 설교도 구약을 강해할 때는 축복을, 복음서를 강해할 때는 십자가의 도를 강조한다. 교인들도 헷갈린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II.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
“내가 너를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고 너를 축복하여 내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끼치는 자가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니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 2-3, 현대인)
1. 위의 귀절의 결론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는 것이다. 즉 복을 받는 수혜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모든 민족(all peoples)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일꾼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하나님의 복을 착복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더 이상 복을 주실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버림받게 된다.
2.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가로채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셨다. 마침내 그는 외아들 이삭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이 물질과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겠는가?
로마서의 말씀처럼,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롬 8: 32). 그는 하나님을 닮아갔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3. 야살의 책(the Book of Jasher)을 보면 그의 삶의 일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헤브론에 살 때, 그는 큰 과수원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했다.
“배고픈 자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집에 왔으며, 아브라함이 그에게 빵을 주어 먹고 마시고 만족하게 했으며, 옷이 없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집에 왔고, 그가 선택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게 했으며, 그에게 은과 금을 주었고 이 땅에 그를 창조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그에게 알게 하였다. 아브라함이 평생 이렇게 행하였다” (야살의 책 22: 13).
III.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두 가지의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1. 첫째,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알았다.
1) 자기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 성에, 북부 다섯 왕의 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사람들과 재신을 탈취해 갔을 때, 아브라함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다 회수해서 돌아왔다. 그 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은 다 가져가라고 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가 되게 하였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당신의 것은 신발끈이나 실 오라기 하나 갖지 않겠소”(창 14: 23)
2)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사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즉 “내가 부자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즉 그에게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하는 것이 “돈을 벌었다”는 결과보다 더 중요했다. 돈을 벌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된다면, 돈을 벌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속담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처럼, 크리스찬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 아니며, 동시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도 못한다.
2. 둘째,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복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이 그의 일생을 장식했다. 동시에 '섬기는 정신'(servanthood)을 실천했다. 아무리 청지기 정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청지기가 주인처럼 어깨에 힘을 주면 안 된다. 청지기는 맡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심으로 섬겨야 한다. 내가 아무리 힘들게 벌어 부자가 되었어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가치관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IV. 아브라함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1.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그는 헤브론에 살고 있었다. 묘지로 쓸 땅을 사기 위해 헷 족속(the Hittites)에게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사는 나그네, 떠돌이 입니다”. 그러자 헷 사람들이 대답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창 23: 4-6). "내 주여(adoni)", 그는 이미 그 지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명칭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복과 말씀을 전달하는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
2. 여기서 우리는 그의 삶의 열매를 보고 있다.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이런 삶은 그의 집안의 전통이 되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도 요셉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집안 전체를 위해, 나아가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이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았음을 알고 그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
V. 오늘의 크리스찬들은 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어하는가?
스스로 깊이 물어보아야 한다. 복을 받고 아브라함처럼 청지기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 결과가 어떨는지 생각해야 한다.
1. 앞의 글에서 예수는 축복 대신 헌신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렇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복이라면서 강조한 것’도 사실은 헌신이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The Beatitudes)이 바로 그러하다. 팔복의 내용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로 시작해서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로 끝이 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과는 전혀 반대다.
2.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장 먼저 복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영적인 복만이 아니라, 물질과 힘, 그리고 명성까지 받았다. 민수기 6장의 내용은 누구나가 좋아하는 하나님의 축복 선언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다음의 말로 복을 선포하면 그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 마다 이 축복문을 읽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기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너에게 자비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인자하게 너를 바라보시며 너에게 평안을 주시기 원하노라”(민 6: 24-26).
3. 그러나 예수는 축복의 약속을 뒤집었다. 자신이 구약에서 이처럼 복을 약속해 놓고, 신약에서는 전혀 얼굴을 바꾸어서 헌신을 명령하셨다? 그래서 오늘 날, 강단의 설교도 구약을 강해할 때는 축복을, 복음서를 강해할 때는 십자가의 도를 강조한다. 교인들도 헷갈린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II.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
“내가 너를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고 너를 축복하여 내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끼치는 자가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니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 2-3, 현대인)
1. 위의 귀절의 결론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는 것이다. 즉 복을 받는 수혜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모든 민족(all peoples)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일꾼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하나님의 복을 착복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더 이상 복을 주실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버림받게 된다.
2.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가로채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셨다. 마침내 그는 외아들 이삭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이 물질과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겠는가?
로마서의 말씀처럼,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롬 8: 32). 그는 하나님을 닮아갔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3. 야살의 책(the Book of Jasher)을 보면 그의 삶의 일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헤브론에 살 때, 그는 큰 과수원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했다.
“배고픈 자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집에 왔으며, 아브라함이 그에게 빵을 주어 먹고 마시고 만족하게 했으며, 옷이 없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집에 왔고, 그가 선택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게 했으며, 그에게 은과 금을 주었고 이 땅에 그를 창조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그에게 알게 하였다. 아브라함이 평생 이렇게 행하였다” (야살의 책 22: 13).
III.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두 가지의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1. 첫째,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알았다.
1) 자기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 성에, 북부 다섯 왕의 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사람들과 재신을 탈취해 갔을 때, 아브라함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다 회수해서 돌아왔다. 그 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은 다 가져가라고 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가 되게 하였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당신의 것은 신발끈이나 실 오라기 하나 갖지 않겠소”(창 14: 23)
2)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사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즉 “내가 부자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즉 그에게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하는 것이 “돈을 벌었다”는 결과보다 더 중요했다. 돈을 벌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된다면, 돈을 벌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속담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처럼, 크리스찬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 아니며, 동시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도 못한다.
2. 둘째,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복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이 그의 일생을 장식했다. 동시에 '섬기는 정신'(servanthood)을 실천했다. 아무리 청지기 정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청지기가 주인처럼 어깨에 힘을 주면 안 된다. 청지기는 맡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심으로 섬겨야 한다. 내가 아무리 힘들게 벌어 부자가 되었어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가치관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IV. 아브라함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1.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그는 헤브론에 살고 있었다. 묘지로 쓸 땅을 사기 위해 헷 족속(the Hittites)에게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사는 나그네, 떠돌이 입니다”. 그러자 헷 사람들이 대답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창 23: 4-6). "내 주여(adoni)", 그는 이미 그 지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명칭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복과 말씀을 전달하는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
2. 여기서 우리는 그의 삶의 열매를 보고 있다.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이런 삶은 그의 집안의 전통이 되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도 요셉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집안 전체를 위해, 나아가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이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았음을 알고 그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
V. 오늘의 크리스찬들은 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어하는가?
스스로 깊이 물어보아야 한다. 복을 받고 아브라함처럼 청지기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 결과가 어떨는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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