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12) 구원의 확신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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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3,072회 작성일 24-03-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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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어떤 대화

  1.  어떤 교인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예수를 믿다가 예수를 부인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회개하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만약 회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그는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 대답을 거부했다.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예수를 부인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있다. 혹은 없다” 이다. 그러나 그는 즉답을 회피하고 “회개하면 간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좀 이상하기는 해도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회개에 관한 말씀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마 18:22).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 1:8).

  2.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만일 회개하지 못하면?”이라고 물었을 때다. 대답을 회피할 수는 있다. 그런데 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도 목사가 있는데...."라고 대화를 비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현재의 습관과 삶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나이가 더 먹은 후에, 천국에 가기 직전에 회개해도, 천국에 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의 질문은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된다.
 
    그는 칼빈의 이중예정설이나 성도의 견인에 관해 들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교회에서 자주 듣는 설교에는, "여러분 구원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므로, 나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많다.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지식이 그의 신앙생활에 방탄조끼가 되어왔던 것이다. 그는 신앙생활을 한지 수십 년이 넘었고, 교회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다. 즉 그는 구원의 확신을 확신하는 오랜 신자였다. 그런 그가 왜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가? 

  3.  아마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요즈음 강단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설교는 사라지고 있다. 요사이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당장 말씀앞에 복종하고 나의 습관과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지금 행동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행동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행동을 고쳐야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는 상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언가 귀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II.    전도방법과 구원의 확신

 1.  이제까지 많이 사용되어 온 전도방법에는 사영리(Four Spiritual Laws), 전도폭발(Evangelism Explosion), 혹은 브릿지(Bridge)와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미국에서 출발해서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동안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도방법과 내용은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회심을 끌어내도록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신앙 전체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전도방법이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2.  예를 들어 보자.

  1) 전도 대상자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이제 당신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상대방이 “예”라고 대답하면 영접기도를 함께 한다. “나는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인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2) 그러면 다음과 같은 성경귀절(요 5:24, 혹은 요일 5:13)을 인용하면서 선포한다. “이제부터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지옥에 가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3) 그리고 네비게이토(Navigator)에서는 곧 바로 5 가지의 확신을 가르친다. 즉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이다. 즉 영접기도와 선포를 재확인하고 믿음의 확신을 주기 위함이다. 이 때 전도대상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게 될까?
   
    전도폭발의 경우는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나는 전도폭발 교사훈련을 받을 때, 신앙생활한지 오래된 교회 직분자에게 전도를 한 적이 있다. "권사님, 만일 오늘밤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까?" "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문 앞에 섰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즉답을 하지 못 했다. 보통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무슨 염치로..."라고 반응한다. 그래서 30 분간 전도를 다시 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이끌어 냈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분은 "구원의 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4)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겨난다. “이제부터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무슨 잘못이 있어도 천국에 갈 것이다”는 의미일까?  전도하는 사람이 그 선포의 신학적인 의미를 이해하는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그렇게 의미 전달이 이루어지고, 받아들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전도대상자가 생각하는 구원의 확신은 무엇일까? 감정적 확신일까? 믿음에 관한 지식적 깨달음일까? 의지적 결심일까?
 
  이를 방지하려고 전도폭발에서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예수와 인격적인 믿음의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 정도까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예"라고 대답했고, 그 결과 구원의 선포를 들었고, 그 결과 나는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가 없다. 어느 쪽이 틀렸을까?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소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III.  혼란에 빠진 구원의 확신
   
  1.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은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확신”이다. 좀 더 확대하면, “내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다. 확신이 있으면 어려움과 유혹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없으면 여지없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박해받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최근에 구원의 확신에 대한 양극화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원의 확신을 깨달음이나 감정적 확신의 차원에서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거나, 아니면 이런 생각의 바탕 위에 자신의 신앙을 세우는 왜곡된 확신을 가진다. 이것은 잘못하면 구원파의 구원론과 외관상 비슷해 보인다. 그들은 '지식적 깨달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얻으면, 그 후에는 어차피 썩을 육신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간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런 생각으로 방탄조끼를 삼는다고 해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영적 바로미터(barometer)가 내적, 외적 환경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당신은 천국에 갈 것"이라는 설교나 자기 확신을 주입해도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을 없애기 힘을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그 사람이 대답을 회피했던 것이고, 율법을 지켰다고 자신했던 부자 청년도 불안했기 때문에 예수께 나아왔던 것이다. 
     
  2.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확신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신앙이 그저 마음의 평안을 얻거나 교제에 치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런 경향도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교인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예수 믿으면 잘 될 것이라는 '값싼 복음'(cheap gospel)을 장기간 먹인 결과가 아닐까? 사회는 점점 포스트모던화, 개인화, 탈교회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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