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11) 가롯 유다와 예정(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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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65회 작성일 24-03-11 20:18본문
III. 사도행전이 본 가롯 유다
1. 베드로는 마가 다락방에 모인 약 120명의 제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를 잡아간 사람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어 미리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마땅히 이루어져야만 하였습니다(행 1: 16).
1) 그는 유다의 배신이 “다윗의 예언대로 된 것" 이고(시 41:9), 예언은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당연히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했다(행 1: 16). 여기서 베드로는 가롯 유다 개인을 지적해서 예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이루어진다"는 보편적 원리를 말하고 있다.
2) 뿐만 아니라, 구약 어느 곳에서도 예수의 십자가가 가롯 유다의 배신을 통하여야만 이루어진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가롯 유다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이다.
2. 베드로의 다음 말을 보자.
“시편에 기록하기를 '그의 거처가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행 1: 20).
1)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근거로(시 109:8),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언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윗의 예언이 유다라는 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유다는 자신의 욕심과 사탄의 유혹으로 배신한 것이다(눅 22:3).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배신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가롯 유다가 창세전부터 예수를 배신할 사람으로 선택된 것도 아니고, 지옥갈 예정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IV. 유다에 대한 예수의 말씀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요 17: 12).
1. 위의 기도는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만찬장을 떠난 뒤에 하신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신 제자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켰다. 그러나 멸망의 자식, 유다는 끝내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멸망의 자식”은 지옥 갈 자라는 뜻이다. 예수는 유다를 지키려고 힘을 쏟았지만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했다. 유다 스스로가 예수의 보호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기도를 하시는 예수의 심정은 “유다, 이 나쁜 놈, 꼴 좋게 되었다” 일까? 아니다. 애써 키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2. 예수는 제자들을 가리켜, “세상에서 이끌어내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한다(요 17:6).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을 선택하여 예수께 주셨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다. 예수는 그들을 지켰다. 그러나 유다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제자들을 끝까지 지킨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떠난 뒤에는 아버지께서 악한 자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요 17: 15). 유다가 악한 자, 곧 사탄의 유혹으로 멸망의 자식이 된 것처럼, 남은 자들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수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유다의 배신과 잃어버림은 예수에게 상당한 상실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하고 지키려고 했는데, 한 마리의 양은 지키지 못했구나! 남아 있는 양들은 반드시 지킨다! 예수의 마음이 느껴진다.
3. 그러면 예수는 왜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라고 하실까? 이것은 결과론적인 표현이다. 즉 유다가 배신하는 것을 보니 성경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군요. 또 그래야 마땅하고요"라는 의미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가 유다를 그쪽으로 몰아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이 유다에게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을 깔아 놓으신 것도 아니다.
V. 가롯 유다와 예정
1. 이제까지 가롯 유다가 칼빈의 말처럼 "지옥 예정자 였던가"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칼빈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인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떠한 마음이나 행위를 하기도 전에,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구원할 자와 버릴 자를 예정해 놓으셨다". 만약 이러한 그의 논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된다. "가롯 유다는 지옥 예정자이기 때문에 결국 지옥 갈 죄를 짓고 지옥에 간 것이다. 만약에 그가 천국 예정자였다면, 설사 예수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반드시 천국에 갔을 것이다".
2.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아도, 유다가 지옥 예정자이기 때문에 스승을 배신하고 지옥에 갔다는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예정을 세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고 일하시는 분이다. 어찌 계획이 없을까? 다만 인간 개인에 대하여 '누구는 천국으로, 누구는 지옥으로' 가도록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그렇지만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인간 개개인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 놓고, 그렇게 되도록 움직이시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3. 가롯 유다의 배신이 없었더라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가 있었다.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배신의 프로그램을 아무도 모르게 깔아 놓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가 유다를 배신하도록 몰고 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지옥예정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칼빈은 "선택은 버림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기독교강요 2, 23:1). 즉 버림이 있기 때문에 선택이 있는 것이고, 선택이 있기 때문에 버림이 있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가 "버림"으로 예정된 자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신앙을 잃고 지옥에 갔다면, 선택의 경우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개인을 "천국 가도록 예정해 놓으신 다음, 그가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국예정자라 할 지라도 중간에 탈락할 수도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 진다.
칼빈은 이중예정과 성도의 견인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천국예정자는 반드시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칼빈의 이런 주장은 교리(dogma)가 되었다. 어느덧 사람들은 성경보다 이 교리에 더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예수의 가르침일까? 아니면 바울의 가르침일까?
1. 베드로는 마가 다락방에 모인 약 120명의 제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를 잡아간 사람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어 미리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마땅히 이루어져야만 하였습니다(행 1: 16).
1) 그는 유다의 배신이 “다윗의 예언대로 된 것" 이고(시 41:9), 예언은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당연히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했다(행 1: 16). 여기서 베드로는 가롯 유다 개인을 지적해서 예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이루어진다"는 보편적 원리를 말하고 있다.
2) 뿐만 아니라, 구약 어느 곳에서도 예수의 십자가가 가롯 유다의 배신을 통하여야만 이루어진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가롯 유다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이다.
2. 베드로의 다음 말을 보자.
“시편에 기록하기를 '그의 거처가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행 1: 20).
1)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근거로(시 109:8),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언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윗의 예언이 유다라는 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유다는 자신의 욕심과 사탄의 유혹으로 배신한 것이다(눅 22:3).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배신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가롯 유다가 창세전부터 예수를 배신할 사람으로 선택된 것도 아니고, 지옥갈 예정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IV. 유다에 대한 예수의 말씀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요 17: 12).
1. 위의 기도는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만찬장을 떠난 뒤에 하신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신 제자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켰다. 그러나 멸망의 자식, 유다는 끝내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멸망의 자식”은 지옥 갈 자라는 뜻이다. 예수는 유다를 지키려고 힘을 쏟았지만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했다. 유다 스스로가 예수의 보호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기도를 하시는 예수의 심정은 “유다, 이 나쁜 놈, 꼴 좋게 되었다” 일까? 아니다. 애써 키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2. 예수는 제자들을 가리켜, “세상에서 이끌어내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한다(요 17:6).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을 선택하여 예수께 주셨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다. 예수는 그들을 지켰다. 그러나 유다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제자들을 끝까지 지킨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떠난 뒤에는 아버지께서 악한 자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요 17: 15). 유다가 악한 자, 곧 사탄의 유혹으로 멸망의 자식이 된 것처럼, 남은 자들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수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유다의 배신과 잃어버림은 예수에게 상당한 상실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하고 지키려고 했는데, 한 마리의 양은 지키지 못했구나! 남아 있는 양들은 반드시 지킨다! 예수의 마음이 느껴진다.
3. 그러면 예수는 왜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라고 하실까? 이것은 결과론적인 표현이다. 즉 유다가 배신하는 것을 보니 성경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군요. 또 그래야 마땅하고요"라는 의미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가 유다를 그쪽으로 몰아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이 유다에게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을 깔아 놓으신 것도 아니다.
V. 가롯 유다와 예정
1. 이제까지 가롯 유다가 칼빈의 말처럼 "지옥 예정자 였던가"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칼빈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인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떠한 마음이나 행위를 하기도 전에,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구원할 자와 버릴 자를 예정해 놓으셨다". 만약 이러한 그의 논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된다. "가롯 유다는 지옥 예정자이기 때문에 결국 지옥 갈 죄를 짓고 지옥에 간 것이다. 만약에 그가 천국 예정자였다면, 설사 예수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반드시 천국에 갔을 것이다".
2.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아도, 유다가 지옥 예정자이기 때문에 스승을 배신하고 지옥에 갔다는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예정을 세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고 일하시는 분이다. 어찌 계획이 없을까? 다만 인간 개인에 대하여 '누구는 천국으로, 누구는 지옥으로' 가도록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그렇지만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인간 개개인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 놓고, 그렇게 되도록 움직이시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3. 가롯 유다의 배신이 없었더라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가 있었다.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배신의 프로그램을 아무도 모르게 깔아 놓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가 유다를 배신하도록 몰고 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지옥예정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칼빈은 "선택은 버림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기독교강요 2, 23:1). 즉 버림이 있기 때문에 선택이 있는 것이고, 선택이 있기 때문에 버림이 있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가 "버림"으로 예정된 자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신앙을 잃고 지옥에 갔다면, 선택의 경우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개인을 "천국 가도록 예정해 놓으신 다음, 그가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국예정자라 할 지라도 중간에 탈락할 수도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 진다.
칼빈은 이중예정과 성도의 견인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천국예정자는 반드시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칼빈의 이런 주장은 교리(dogma)가 되었다. 어느덧 사람들은 성경보다 이 교리에 더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예수의 가르침일까? 아니면 바울의 가르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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