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10) 가롯 유다와 예정(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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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879회 작성일 24-03-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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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공관복음이 본 가롯 유다

    1.    공관복음(synoptic gospels)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가롯 유다에 관한 예수의 언급을 기록하고 있다.

  1)  첫째,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막 14: 18). 시편 41: 9 절의 인용이다.

  2) 둘째,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막 14:21).  예수는 자신이 구약의 예언대로 고난을 당해 죽는다고 밝힌다(시 22, 사 53). 그리고 유다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유다 자신에게 좋았을 것이다. 유다는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3) 셋째, 마태는 유다의 뻔뻔스러운 태도를 덧붙이고 있다.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니지요? (Surely not I, Rabbi)”(마 26: 25).  그리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이 유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인지 아닌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요한의 기록을 참조하면 회개를 촉구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순간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 예수님이 유다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고 말씀하셨다”(요 13: 27).


    2.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첫째,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구약의 예언대로 되었다. 그렇지만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곧 유다가 “지옥에 가도록 예정된 자”라는 직접적인 의미가 될 수는 없다. 

2) 둘째,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예수의 언급이 곧 유다가 지옥 예정자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지옥 예정자를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 예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적인 표현으로 보여진다.

3) 셋째,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예수는 끝까지 가롯 유다의 회개를 촉구했다고 한다면, 더욱 유다가 “버림받음”(reprobation)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은 어느 성경 주석의 해설이다. “예수께서는 돌이킬 기희를 주기 위해 변함없이 그틀 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의 악을 버러지 않음으로써 마지막 회개의 기희조차 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 주석은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칼빈의 이중예정설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칼빈은 정확히 유다가 지옥으로 예정된 자였다 주장한다. 지옥 갈 예정자는 반드시 지옥에 간다. 그리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free will)가 없다. 그럼에도 예수는 유다를 앞에 두고서 “마지막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를 위선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예수(하나님)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가 가장 싫어한 사람은 위선자이다.

  만약 칼빈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유다에게, 유다도 알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다. 유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피조물이 조물주의 예정을 측량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모두 다 선하고 완전하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논리라면 모든 인간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II.    요한이 본 가롯 유다
 
  1.  유다는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므로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도 이와 같이 깨끗하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팔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다. 그래서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3: 10-1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거듭남”(regeneration)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요 3장).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 거듭남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된다. 즉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요한은 이 주제를 유다와 관련 짓고 있다. 예수의 세족을 받았지만 목욕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거듭난 자가 아니다. 어떻게 그가 거듭난 자가 아님을 알 수 있는가? 그는 예수를 배신하고 넘겼기 때문이다.

  2.  유다는 예수를 영접한 자가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너희 모두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너희 하나하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사람이 나를 배반하였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이 일을 미리 너희에게 일러주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너희가 믿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자이며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자이다”(요 13: 18-20).

  요한복음에서 영접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손님을 잘 대접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 13-14). 여기서 “영접하다”(λαμβάνω, lambano)는 자신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마음속으로부터 왕으로 모신다는 뜻이다. 이는 곧 예수를 주(Lord)로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곧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앙의  박해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강력한 권고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였다. 그는 스스로 믿는 자가 아님을 드러냈다. 따라서 향후 누구든지 배교(背敎)하는 자는 믿는 자가 아니다.     

  3. 칼빈의 예정교리에 따르면 “거듭나지 않은 자는 지옥 예정자”이다. “믿음의 배신자는 지옥 예정자”이다. 천국 예정자라면 아무리 배신을 했더라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4.  만일 칼빈의 예정론을 따르면 계속되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1)    “유다는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결국 거듭나지는 못 했다”라고 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유다는 예수의 제자까지 되었지만, 결국 진심으로 예수를 주로 믿지는 못했다"고 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지옥 예정자이기 때문에 예수를 아무리 따라 다녔지만 끝내 거듭나지 못 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면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 하나님(예수)은 지옥 예정자 유다를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의 제자로 삼으셨을까? 이것은 칼빈의 말대로 영원한 신비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사항이므로 인간이 다루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인가?
 
  2)  예수는 유다를 제자로 삼아서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열외자로 취급했을까? 그랬더라면 그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거나, 능력을 주어서 전도하러 보내거나, 아니면 회계의 임무를 맡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예수의 성품과 행동을 볼 때 가까이 있는 유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최후의 만찬 때는 예수가 그의 회개를 촉구하는 적극적인 말씀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가서 어떠한 충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성품과 행동으로 보았을 때, 가롯 유다는 지옥예정자가 아니다. 예수를 따랐지만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가 되지 못 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정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예정을 다 알지 못하는 인간이 섣불리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5.  이제까지 가롯 유다가 지옥 예정자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았다. 왜 이 주제가 중요한가? 그것은 바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다. 자주 쓰이는 이 말의 뜻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개신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어떠한 잘못을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개시켜서 천국에 데려가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칼빈의 예정교리이다. 칼빈은 가롯 유다가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자였기 때문에 예수를 따라 다녔지만 결국 배신하고 지옥에 갔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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