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4) 예수는 이렇게 주장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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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3,017회 작성일 24-01-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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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매(賣買)가 신앙에 흙탕물을 끼얹었다.
 
  1) 제사를 드릴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부터 성전까지 양(羊)을 끌고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일반시장에서 사 오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양이 제사에 합당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성전의 직원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성전에서 파는 양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가격이 시중가보다 비쌌다. 가야바의 그룹은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사업을 직영으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 그렇다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로마 황제 네로(Nero) 때(AD 65), 시리아 총독 갈루스(C. Gallus)의 요청에 의하여 성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월절에만 잡은 양의 숫자가 무려 256,500 마리였다(F. Josephus, 유대전쟁사 VI, 9:3). 당시 양 한 마리의 가격을 8 데나리온(denarius)으로 계산하면, 유월절에 잡은 양의 가격은 2 백만 데나리온이 넘는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었으므로, 1,600 억이 넘는다. 어디 양만 잡았겠는가? 소도 잡고 비둘기도 잡았다. 소 한 마리의 가격은 30 데나리온이었다. 그리고 희생제사는 일 년 내내 드려지고 있었다.  짐승 한 마리에 얼마만큼 이익을 남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엄청난 수익이었을 것이다.

  3) 이처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market)’로 만든 것은 성전 지도자들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도 무관하지 않다. 산 위에 위치한 척박한 도시 예루살렘은 별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들의 주된 수입원(收入源)은 성전이었다. 많은 주민들이 성전을 통하여 먹고 살았다. 하다 못해 식당, 기념품점까지…. 따라서 예루살렘 주민들도 성전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행위들의 가담자들이었다.  오늘 날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Via Dolorosa)을 오르다 보면, 좁은 길 양쪽에서 물건을 흔들며 "원 달라(one dollar)" 라고 시끄러운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수 많은 상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당시에도 별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4) 예배자들도 이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매매와 환전으로 인해 손해본다는 생각이야 하겠지만, 대신 그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면도 없지 않다.  이렇게 보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정경유착(宗政經癒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든든한 뒷배였다.  이처럼 편리성(convenience)과 이익(profit)은 신앙을 흐리게 하다가 결국 삼켜버리고 말았다.

      3. 고독한 외침: 아무도 예수의 편에 서지 않았다.

1) 성전에서 저지른 예수의 말과 행동은 유대교의 지배자들을 화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2) 그렇다고 예수의 언행이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다. 자기들이 늘 예배를 드리는 멋진 건물을 헐려고 한다면 누가 참겠는가? “이 성전을 헐어버려라. 그러면 내가 3  일 만에 다시 일으킬 것이다”라고 했을 때, 그들은 예수를 비판하며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46 년 동안 걸려 지은 이 웅장한 건물을 단지 3일만에 짓는다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힘들어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예수를 이렇게 비난했다.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는 자야...."(마 27: 40).

3) 일반대중이 어찌 예수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제자들도 예수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수는 참으로 고독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에, 고독한 죽음속으로 뛰어 들었던 것이다(요 2:17).

4) 성전에서 매매하는 행위 때문에 성전까지 허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상식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예수에게 있어서 성전의 매매는 유대종교의 돌이킬 수 없는 부패성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단순히 성전의 매매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신앙이 회복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부패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결과가 매매행위와 환전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5) 유대인들의 질문에 예수는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사도 요한의 이해로는 사흘 만에 새로 짓는 성전은 예수의 몸이었다(요 2: 21). 즉 유대종교의 부패성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죽어야만 해결될 정도로 심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4.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야바의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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