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3) 예수는 이렇게 주장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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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3,149회 작성일 24-01-01 18:27본문
I. 성전을 허물어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
1. AD 26년 봄, 유월절(Passover)을 맞아, 서른 살의 예수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는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서 소동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씨앗이 되어 예수는 죽임을 당한다. 이 말이 왜 그처럼 그들을 화나게 했을까?
예수가 말한 성전(ναός, naos)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지성소(至聖所, the Most Holy Place)가 있는 성전의 본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 나아가서 유대교의 존재 기반이다. 따라서 "성전을 허물어라"는 예수의 말은 유대교 자체를 허물라는 뜻이다. 유대교가 무너지면 그들의 국가도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정확히 그렇게 이해를 했다.
2. 한편 “허물어라(λύσατε, lysate)”는 말은 명령형이다. “너희들이 스스로 이 성전을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직접 허물 것이다는 경고이다.
3. 누구를 향하신 말씀일까?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 즉 종교. 정치 권력의 핵심부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II. 왜 허물라고 하셨는가?
1. 환전(換錢)이 신앙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1)성전 마당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환전과 매매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요 2: 16). 스무 살이 넘은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반 세겔(shekel)의 성전세를 납부해야 했다(출 30:13). 예수도 성전세를 납부했다(마 17:27). 성전세를 부과하는 기관은 성전이고, 그들은 성전세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제물을 마련하거나, 성전에 필요한 목재, 기름, 의복들을 구입하거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성전세는 시중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닌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즉 성전 세겔(temple shekel)로 납부해야만 했다. 예배자들에게는 환전이 불가피했다.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뜰에 환전소를 설치한 것이 오히려 예배자들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닌가? 왜 예수는 환전 행위가 성전을 허물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고 헸을까?
2) 성전 세겔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당시 시중에서 통용되는 로마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마 22: 19-21). 이 돈을 사용하면 십계명 2 계명을 위반하게 된다. 국가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로마 당국의 허락 하에, 두로(Tyres)에서 주조된 동전(Tyrian Drachma)을 가져다가 소위 “거룩한 화폐”(sacred shekel)로 구별하여 사용했다.
마태는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을 “반세겔 받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마 17: 24). 이는 헬라어 본문 “디드라크마(δίδραχμα, didrachma)를 거두는 사람”을 번역한 것인데, 디드라크마는 드라크마 두 개(two drachma)를 뜻한다. 두로의 동전 두 개가 반세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전의 앞면에 멜카트(Melqart)의 형상이, 뒷면에는 독수리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멜카트는 바알(Baal)의 아들로 페니키아의 수호신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신앙을 지키려고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로마의 화폐를 거부한 그들이, 오히려 우상이 새겨진 두로의 화폐를 거룩한 화폐로 선정해서 사용하다니….
우상의 형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빌라도(P. Pilate)가 로마 황제의 형상과 독수리가 그려진 깃발(軍旗)을 밤에 예루살렘으로 들여왔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단체로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Cesarea)에 몰려 가서 군기를 예루살렘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땅바닥에 앉아 5일 동안 기다렸다. 제 6일째,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형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죽인다”고 말했다. 칼을 빼어 든 군사들이 유대인들을 3 중으로 에워쌌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오히려 목을 길게 빼고는 죽이라고 소리쳤다. “율법이 짓밟히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이에 빌라도는 충격을 받고 군기를 예루살렘 밖으로 물렸다(유대전쟁사 II, 2:9).
3) 이랬던 유대인들이 어찌 멜카트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거룩한 화폐라고 부르며 성전에서 사용하고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여기에는 차마 밝힐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시중에서 통용되던 화폐를 그대로 성전에서 사용하면 환전수수료(currency exchange fee)를 챙길 수 없다. 당시 로마의 화폐(denarius), 그리스의 화폐(drachma), 혹은 유대의 일반 세겔(shekel)을 가지고 성전 세겔로 바꾸려면 적어도 반 세겔 당 24 분의 1의 수수료(kolbon)를 지불해야 했다. 실제로 환전상들은 규정보다 더 많이 받곤 했다.
대제사장들은 진작부터 환전수수료를 노리고 이 일을 추진했다. 성전세로 거두는 반 세겔은 은으로 약 6 그램(g)이었다. 그런데 이 가치에 맞는 동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두로의 동전(Tyrian Drachma)만이 적합했다.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성전화폐를 설정하고 환전수수료를 받을 수만 있다면 막대한 수익이 샘물처럼 솟아나오기 때문이다. 명분은 충분했다. 로마의 화폐는 압제자의 화폐가 아닌가? 더구나 십계명 2 계명에 위반되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런 화폐를 어떻게 성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한다면 누가 감히 딴죽을 걸겠는가?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까지는 성전세를 내야 했다. 스스로 내지 않으면 강제집행 되었다. 유월절이 되면 유대 땅에 사는 유대인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부터 유대교 신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온다.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시리아 총독 갈루스(Cestius Gallus)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유월절에 약 3 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모였다(유대전쟁사 II, 14:3).
이 가운데 성전세를 내야 하는 20세 이상의 남자를 3분의 일로 보아도 약 100만 명, 이들로부터 걷는 성전세는 50만 세겔이다. 당시 은 한 세겔을 4 데나리온(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계산해 보면, 환전수수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백성들은 성전세만 낸 것이 아니다, 각종 헌금의 액수도 어마 어마 했다.
원래는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 환전과 짐승의 매매를 위한 장소가 있었다. 이것을 성전의 마당으로 들여온 사람은 제 59대 대제사장 안나스(Annas, AD 6-15)였다. 그의 가문은 사위 가야바를 포함하여 8명의 대제사장을 배출했다(AD 6-AD 62). 그는 시리아의 총독 키레니우스(Quirinius)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탐욕스러웠지만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가문의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그들은 환전과 매매를 성전 뜰로 들여오면서 이처럼 거룩한 사업(?)을 위탁경영이 아닌 직영체제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무너지고, 국가가 망할 때까지 그들의 사업을 바꾸지 않았다. 자신들의 현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야만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자신들의 사치는 차치하고서라도.
3) 우리는 환전이라는 창(窓)을 통하여,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스런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실 우상 숭배자였고, 그들의 우상은 돈이었다. 성전은 그들의 사업장이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 이들이 이끄는 유대교, 그 중심이 되는 성전은 배신 행위의 온상이었다. 헐어버리고 새롭게 세워야 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
1. AD 26년 봄, 유월절(Passover)을 맞아, 서른 살의 예수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는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서 소동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씨앗이 되어 예수는 죽임을 당한다. 이 말이 왜 그처럼 그들을 화나게 했을까?
예수가 말한 성전(ναός, naos)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지성소(至聖所, the Most Holy Place)가 있는 성전의 본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 나아가서 유대교의 존재 기반이다. 따라서 "성전을 허물어라"는 예수의 말은 유대교 자체를 허물라는 뜻이다. 유대교가 무너지면 그들의 국가도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정확히 그렇게 이해를 했다.
2. 한편 “허물어라(λύσατε, lysate)”는 말은 명령형이다. “너희들이 스스로 이 성전을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직접 허물 것이다는 경고이다.
3. 누구를 향하신 말씀일까?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 즉 종교. 정치 권력의 핵심부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II. 왜 허물라고 하셨는가?
1. 환전(換錢)이 신앙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1)성전 마당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환전과 매매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요 2: 16). 스무 살이 넘은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반 세겔(shekel)의 성전세를 납부해야 했다(출 30:13). 예수도 성전세를 납부했다(마 17:27). 성전세를 부과하는 기관은 성전이고, 그들은 성전세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제물을 마련하거나, 성전에 필요한 목재, 기름, 의복들을 구입하거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성전세는 시중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닌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즉 성전 세겔(temple shekel)로 납부해야만 했다. 예배자들에게는 환전이 불가피했다.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뜰에 환전소를 설치한 것이 오히려 예배자들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닌가? 왜 예수는 환전 행위가 성전을 허물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고 헸을까?
2) 성전 세겔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당시 시중에서 통용되는 로마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마 22: 19-21). 이 돈을 사용하면 십계명 2 계명을 위반하게 된다. 국가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로마 당국의 허락 하에, 두로(Tyres)에서 주조된 동전(Tyrian Drachma)을 가져다가 소위 “거룩한 화폐”(sacred shekel)로 구별하여 사용했다.
마태는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을 “반세겔 받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마 17: 24). 이는 헬라어 본문 “디드라크마(δίδραχμα, didrachma)를 거두는 사람”을 번역한 것인데, 디드라크마는 드라크마 두 개(two drachma)를 뜻한다. 두로의 동전 두 개가 반세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전의 앞면에 멜카트(Melqart)의 형상이, 뒷면에는 독수리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멜카트는 바알(Baal)의 아들로 페니키아의 수호신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신앙을 지키려고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로마의 화폐를 거부한 그들이, 오히려 우상이 새겨진 두로의 화폐를 거룩한 화폐로 선정해서 사용하다니….
우상의 형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빌라도(P. Pilate)가 로마 황제의 형상과 독수리가 그려진 깃발(軍旗)을 밤에 예루살렘으로 들여왔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단체로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Cesarea)에 몰려 가서 군기를 예루살렘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땅바닥에 앉아 5일 동안 기다렸다. 제 6일째,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형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죽인다”고 말했다. 칼을 빼어 든 군사들이 유대인들을 3 중으로 에워쌌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오히려 목을 길게 빼고는 죽이라고 소리쳤다. “율법이 짓밟히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이에 빌라도는 충격을 받고 군기를 예루살렘 밖으로 물렸다(유대전쟁사 II, 2:9).
3) 이랬던 유대인들이 어찌 멜카트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거룩한 화폐라고 부르며 성전에서 사용하고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여기에는 차마 밝힐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시중에서 통용되던 화폐를 그대로 성전에서 사용하면 환전수수료(currency exchange fee)를 챙길 수 없다. 당시 로마의 화폐(denarius), 그리스의 화폐(drachma), 혹은 유대의 일반 세겔(shekel)을 가지고 성전 세겔로 바꾸려면 적어도 반 세겔 당 24 분의 1의 수수료(kolbon)를 지불해야 했다. 실제로 환전상들은 규정보다 더 많이 받곤 했다.
대제사장들은 진작부터 환전수수료를 노리고 이 일을 추진했다. 성전세로 거두는 반 세겔은 은으로 약 6 그램(g)이었다. 그런데 이 가치에 맞는 동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두로의 동전(Tyrian Drachma)만이 적합했다.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성전화폐를 설정하고 환전수수료를 받을 수만 있다면 막대한 수익이 샘물처럼 솟아나오기 때문이다. 명분은 충분했다. 로마의 화폐는 압제자의 화폐가 아닌가? 더구나 십계명 2 계명에 위반되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런 화폐를 어떻게 성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한다면 누가 감히 딴죽을 걸겠는가?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까지는 성전세를 내야 했다. 스스로 내지 않으면 강제집행 되었다. 유월절이 되면 유대 땅에 사는 유대인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부터 유대교 신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온다.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시리아 총독 갈루스(Cestius Gallus)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유월절에 약 3 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모였다(유대전쟁사 II, 14:3).
이 가운데 성전세를 내야 하는 20세 이상의 남자를 3분의 일로 보아도 약 100만 명, 이들로부터 걷는 성전세는 50만 세겔이다. 당시 은 한 세겔을 4 데나리온(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계산해 보면, 환전수수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백성들은 성전세만 낸 것이 아니다, 각종 헌금의 액수도 어마 어마 했다.
원래는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 환전과 짐승의 매매를 위한 장소가 있었다. 이것을 성전의 마당으로 들여온 사람은 제 59대 대제사장 안나스(Annas, AD 6-15)였다. 그의 가문은 사위 가야바를 포함하여 8명의 대제사장을 배출했다(AD 6-AD 62). 그는 시리아의 총독 키레니우스(Quirinius)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탐욕스러웠지만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가문의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그들은 환전과 매매를 성전 뜰로 들여오면서 이처럼 거룩한 사업(?)을 위탁경영이 아닌 직영체제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무너지고, 국가가 망할 때까지 그들의 사업을 바꾸지 않았다. 자신들의 현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야만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자신들의 사치는 차치하고서라도.
3) 우리는 환전이라는 창(窓)을 통하여,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스런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실 우상 숭배자였고, 그들의 우상은 돈이었다. 성전은 그들의 사업장이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 이들이 이끄는 유대교, 그 중심이 되는 성전은 배신 행위의 온상이었다. 헐어버리고 새롭게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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