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2) 가야바는 왜 예수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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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92회 작성일 23-12-3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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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감정적 이유 때문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마 27: 18)
 
  1. 유대인들은 예수를 시기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소문난 살인자,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사면해 주었으면 좋을까"라고 백성들의 선택을 물었다. 유대인들은 살인자의 사면을 원하면서도 무죄한 예수는 반드시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선택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는 단어는 과거 완료형이다. 그는 이미 그들이 예수를 기어코 죽이려는 이유가 시기심 때문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혹시나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들의 선택을 물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역시나’였다.

 2.  왜 그들은 예수를 시기했을까?

    성경에서 사용한 ‘시기’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마태는 프도누스(φθόνους, pthonous)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시기를 의미하는 헬라어, 젤로스(ζῆλος, jealousy)와는 좀 다르다. 젤로스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나도 갖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라면, 프도누스는 그 부러움을 행동으로 옮겨서 ‘빼앗고, 만일 빼앗지 못하면 그 사람도 갖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이 가졌던 시기와 동일하다(Cain’s Complex).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죄악이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의 마음과 태도이다.

    그런데 마가는 시기심을 품었던 장본인이 ‘대제사장들’이라고 밝히고 있다(막 15:10). 대제사장들, 즉 가야바와 안나스의 집안이 왜 예수를 시기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지 않았다. 이미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맛을 알아버렸던 집단이다. 가인의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II.  신학적 및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1.  예수는 유대인 종교지도층이 해석하고 가르친 구약의 해석을 바로 잡으려고 했다. 특히 마태복음 5-7장에서 마태는 이를 밝히고 있다. “모세의 법에는 …라고 쓰여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 예수님의 어법(語法)은 그들의 권위를 조목조목 무너뜨렸다.

 2.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던 하나님 말씀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밝혀주고 있다. 예수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당시의 정치, 종교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해방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수 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전에 그 뿌리를 뽑아야 했다.
 

            III.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1.  대제사장 가야바는 산헤드린(συνέδριον, Sanhderi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민족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시오” (요 11:50). 이것이 그 유명한 가야바의 원칙(Caiaphas’ Principle)이다.

 2.  예수 한 사람 때문에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예전처럼 로마 군대가 개입할 것이고, 지금 간당간당하고 있는 우리의 자주권마저 완전히 빼앗길 것이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갈 것이다. 산헤드린의 그 누구도 가야바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3. 사실 정치적 이유가 앞에서 언급한 감정적, 신앙적 이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감정적, 신앙적 이유라면 어느 정도 참을 수도 있고, 의견이 갈릴 수도 있지만, 가야바의 논리에는 어떠한 이견(異見)도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그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IV.  묻고 대답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가야바의 주장과  예수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왜 두 사람은 양립할 수 없었는가? 어떻게 지난 2천 년간 신앙과 교회에 영향을 주었는가? 그 결과 기독교는 어떻게 변해 왔는가? 성경의 대답을 찾고 대안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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