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21) 교회의 대형화는 바벨탑이다(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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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58회 작성일 24-01-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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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바벨탑을 쌓는 대형화의 꿈

    1.  교회 대형화의 동기는 무엇일까? '

 1)  사람들은 정말로 복음전파를 더 효과적으로 하려고 큰 교회 만들기에 온 힘을 쏟을까? 예수의 참된 제자를 양육하려고 그렇게 할까? 큰 교회 만들면 예수님이 더 기뻐하실까? 사람들은 왜, 무슨 목적으로 자꾸만 교회를 크게 키울려고 할까?

  2)  어느 대형교회에 담임목사가 새로 부임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목회방침의 하나를 발표를 했다. "향후 일 년 안에 출석교인의 숫자를 2 배로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장년 출석이 1 만 명이었는데 일 년 안에 2 만으로? 다들 놀라기는 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교회성장은 교회의 이데올로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왜 일년 안에 2 만 명이 되어야 하는지, 그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담임목사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성장을 위한 수 많은 프로그램에 돈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담임목사도 몇 년 후에 사임했다. 

  묻고 싶다. 정말로!  만약 일 년 안에 두 배로 불어났더라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었냐고? 아마도 "다음 일 년 안에 또 두 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두 배가 늘었다고 해도 사실은 대부분 그들은 작은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다. 정작 심방을 해 보면 대부분 작은 교회가 부담스러워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먹이사슬(food chain)처럼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교인들의 이동이 일어나면,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큰 교회들이 고인물이 되어 하나 둘 무너지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 전체는 어떻게 될까?

  3)뒤돌아 보면, 그 때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교회들끼리 경쟁했다. 교회의 참된 사명도, 개인의 신앙과 가정도, 교인들간의 영적인 교제도, 그리고 교회의 윤리적인 평판도 안중에 없었다.  오직 교회성장이라는 숫자 불리기에만 빠져있었다. 이러한 가치관과 태도가 가까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 교회와 구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집중했어야 했다. 지금도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4)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려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힘이 생기면 행동으로 옮긴다. 바벨탑을 쌓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자. 흩어지지 말자"(창 11:4). 이것은 백성들의 복지나 인권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백성들 개인과 가정의 행복과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바벨탑을 높이 쌓을 수록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 질 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바벨탑 프로젝트를 반대하지 못 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멈추게 하실 수 있었다. 교회의 양적 성장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2. 교회성장의 신기루(mirage)
 
1)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1897 -1990년)이 교회성장(church growth)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유는 "어떻게 하면 선교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해답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개교회의 양적성장(numerical growth)이 초점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회성장의 핵심은 전입성장(transfer growth)이 아니라, 한 생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회심성장(growth by conversion)이었다. 그 자신이 선교사였고, 선교사의 아들이었다. 이 정신을 무시하고 사람들은 교회성장의  기술(skill)만을 떼어 내서 개교회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아마 맥가브란도 자신의 외침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 몰랐을 것이다.

 2) 어떤 교회의 목사가 자랑삼아 말했다. 자기 교회의 누구는 지방에 출장 갔더라도 주일에는 비행기 타고 본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다시 간다. 또 어떤 목사는 말했다. 자기 교회의 누구는 다른 도시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그쪽의 교회를 나가지 않고 본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교인들은 아멘 했고 목사들은 부러워했다? 

 3) 예루살렘 교회에서 하루에 3 천 명씩 회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복음을 위해 흩어지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난다는 사도행전의 메시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교회는 책임감을 가지고 성장이 고인물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사도행전의 흐름에 일치한다.


    3. 교회의 대형화는 교회 전체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1) 대형교회의 성장이 다른 교회에 적용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젊은이들이 줄고 있다. 예전처럼 전도가 잘 되지 않는다. 중소 교회는 현상유지도 힘들 뿐, 특히 교회학교가 유명무실하게 된다. 이런 환경속에서 대형교회가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간증거리가 아니다. 다 같이 힘들면 다 같이 돌파구라도 찾을 텐데, 어느 특정 교회는 잘 되고 있다. 교회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잘 되는 교회의 성장비결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지만, 그 교회의 성장비결이 다른 교회에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중소교회는 대형교회처럼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 그리고 인적, 물적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2) 대형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이 기존의 신자라는 점이 문제다. 이들은 중소교회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이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3)대형교회는 점점 복음전파의 효율이 떨어지고, 내부의 문제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몇몇 예외가 있겠지만 보편적인 현상이다. 결국 바벨탑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교회는 사회속에서 능력과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4. 작은 교회가 이상적인가?
 
  1)  그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의 교회가 소규모 였던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성경은 교회의 크기보다는 교회의 사명 감당에 초점을 두고 있다.

  2)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의 말씀 중에, "왜 교회를 크게 키우지 못 했는가? 그 동안 무엇을 했길래..." 라는 책망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교회의 믿음, 태도, 그리고 충성에 대한 책망과 권고가 있었다. 신약성경은 교회의 대형화를 찬성하지도 않지만, 교회의 소형화를 권장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교회다움과 사명감당이었다.
 
  3) 개교회의 양적 성장을 복음전파와 동일시 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성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동일시 하는 것도 문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최고로 더 바랄 것도 없지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다. 교회가 일을 하지 않고 자체의 몸집 만을 불리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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