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17)) 신사참배와 일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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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3,074회 작성일 24-01-21 18:15본문
I.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그랬다.
1. 전쟁중에 진행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神社參拜)는 큰 잡음(?)없이 진행되었다. 정부의 압력으로 모든 교회는 일본기독교단(日本基督教団)이라는 하나의 교단으로 통폐합되었다(1941년). 신사참배는 물론, 교회안에 가미타나(神棚)및 일장기(日章旗)를 설치했다. 그리고 예배전에 먼저 국민의례를 했다.
그런데 일본교회의 신사참배 논리는 한국교회와는 전혀 달랐다. 동경기독대학(TCU)의 교회사 교수, 야마구찌(山口洋一)씨의 지적은 신사참배를 했던 일본교회의 논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전쟁 중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것은 치명적 과오였으며, 전도 활동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국가주의 및 전쟁을 지지한 것 역시 잘못이었다. 전후 교회는 이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다”.
2.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 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 이었을까?
1) 소위 “온가에시(恩返し)”, 즉 보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기에 신사참배로 갚는다는 것일까? 국가의 지도와 보호아래 그 동안 교회가 생존 및 성장했으므로 국가가 위급할 때 힘을 보태는 것이 국가에 소속된 교회의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의 "온가에시(恩返し)"에서의 온(恩)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은혜와는 거리가 먼, 빚(debt)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공짜보다 더 비싼 것은 없다(只より高い物はない)"는 일본의 속담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동의이다.
2) 다른 나라 크리스찬들은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교회가 국가의 하부기관이란 말인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되는 것이지 어떻게 국가의 은혜로 유지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일본이 봉건제도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봉건제도의 특성중의 하나가 바로 보은이다. 봉건영주에게 봉급을 받는 사무라이(侍 )는 자신의 주군(主君)에게 목숨을 걸고 보은을 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사무라이는 처벌받는다.
즉 일본에서 만약에 보은을 하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따라서 은혜를 갚을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고, 괜히 미루다가 남의 눈치를 받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특히 군부독재 시절이 아니었던가?
II. 전도하려고 전쟁을 지지했다.
1. 일본이 청일전쟁(1894)에서 승리한 뒤부터 일본교회안에서는 조선전도론(朝鮮傳導論)이 논의되었다. 요지는 바로, “일본이 이제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는데, 식민지 사람들의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 내고, 그들을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닌 종교의 힘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것이었다.
시마누끼((島貫兵太夫)를 필두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러한 주장은 계속되고, 또 행동화 되었다. 조선 전도를 위해 한국에 파견된 와타세(渡瀨常吉, 1867-1944) 목사는 “한국인들이 복음을 믿어서 일본을 위해 충성을 하는 것이야 말고 종교보국(宗敎報国)”이라고 주장했다(양현혜, 일본기독교의 조선전도).
2. 이러한 일본교회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서구의 제국주의의 선교를 모방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국가에 대한 보은의 적극적 활동이기도 하다. 결국 교회는 스스로 군부독재의 시녀가 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소수의 반론이 일본교회안에서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III. 그들의 신사참배는 신앙과 관계가 없다?
1. 야마구치 교수가 지적한 대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 즉 국가에 대한 보은과 전도활동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에는 어떠한 신앙적인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에서는 적어도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라도 있었지만, 일본교회는 "이러한 때에 교회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논리, 즉 지배와 충성의 논리에 입각해서 신사참배를 한 것이다.
2. 야마구치 교수는 전쟁후에 이 죄(罪)를 다 청산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죄(罪)가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 국민들에게 저지른 죄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의미하는가? 야마구치 교수 자신은 아마 신앙적인 죄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교회의 중론은 과연 그러할까?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에서 유추해 본다면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에서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는 인식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국가가 정한 것이므로, 국가에 소속된 교회의 신사참배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의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3. 이것은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근간이 되는 "와(和)”의 자연스런 발로이다. 즉 일본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 최우선이며, 이를 위해서는 각 하부기관들이 충성을 바침으로서, 일본이라는 사회가 서로 사이좋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가치관이다. 여기에 누구든지 튀어나오면 '모난 돌이 정 맞는 꼴'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 와(和)를 이루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행동이 '전체의 하나됨을 허무는 모난 돌'이 되는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당연히 힘을 가진 자들이 한다. 아무리 회의에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이해득실의 판단은 항상 그 조직을 지배하는 자들의 몫이었다.
4. 정의(justice)는 안정(security)이라는 더 우선적인 가치관에 언제나 함몰될 뿐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뿐 아니라, 사회와 교회사이에서, 그리고 교회안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암묵적 동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국가의 요청에 교단은 거부하지 않았고, 교단의 결정에 개교회나 개인은 반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의 무라하찌부(村八分)를 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조차 예수는 가야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1. 전쟁중에 진행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神社參拜)는 큰 잡음(?)없이 진행되었다. 정부의 압력으로 모든 교회는 일본기독교단(日本基督教団)이라는 하나의 교단으로 통폐합되었다(1941년). 신사참배는 물론, 교회안에 가미타나(神棚)및 일장기(日章旗)를 설치했다. 그리고 예배전에 먼저 국민의례를 했다.
그런데 일본교회의 신사참배 논리는 한국교회와는 전혀 달랐다. 동경기독대학(TCU)의 교회사 교수, 야마구찌(山口洋一)씨의 지적은 신사참배를 했던 일본교회의 논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전쟁 중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것은 치명적 과오였으며, 전도 활동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국가주의 및 전쟁을 지지한 것 역시 잘못이었다. 전후 교회는 이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다”.
2.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 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 이었을까?
1) 소위 “온가에시(恩返し)”, 즉 보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기에 신사참배로 갚는다는 것일까? 국가의 지도와 보호아래 그 동안 교회가 생존 및 성장했으므로 국가가 위급할 때 힘을 보태는 것이 국가에 소속된 교회의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의 "온가에시(恩返し)"에서의 온(恩)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은혜와는 거리가 먼, 빚(debt)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공짜보다 더 비싼 것은 없다(只より高い物はない)"는 일본의 속담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동의이다.
2) 다른 나라 크리스찬들은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교회가 국가의 하부기관이란 말인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되는 것이지 어떻게 국가의 은혜로 유지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일본이 봉건제도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봉건제도의 특성중의 하나가 바로 보은이다. 봉건영주에게 봉급을 받는 사무라이(侍 )는 자신의 주군(主君)에게 목숨을 걸고 보은을 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사무라이는 처벌받는다.
즉 일본에서 만약에 보은을 하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따라서 은혜를 갚을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고, 괜히 미루다가 남의 눈치를 받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특히 군부독재 시절이 아니었던가?
II. 전도하려고 전쟁을 지지했다.
1. 일본이 청일전쟁(1894)에서 승리한 뒤부터 일본교회안에서는 조선전도론(朝鮮傳導論)이 논의되었다. 요지는 바로, “일본이 이제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는데, 식민지 사람들의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 내고, 그들을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닌 종교의 힘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것이었다.
시마누끼((島貫兵太夫)를 필두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러한 주장은 계속되고, 또 행동화 되었다. 조선 전도를 위해 한국에 파견된 와타세(渡瀨常吉, 1867-1944) 목사는 “한국인들이 복음을 믿어서 일본을 위해 충성을 하는 것이야 말고 종교보국(宗敎報国)”이라고 주장했다(양현혜, 일본기독교의 조선전도).
2. 이러한 일본교회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서구의 제국주의의 선교를 모방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국가에 대한 보은의 적극적 활동이기도 하다. 결국 교회는 스스로 군부독재의 시녀가 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소수의 반론이 일본교회안에서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III. 그들의 신사참배는 신앙과 관계가 없다?
1. 야마구치 교수가 지적한 대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 즉 국가에 대한 보은과 전도활동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에는 어떠한 신앙적인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에서는 적어도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라도 있었지만, 일본교회는 "이러한 때에 교회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논리, 즉 지배와 충성의 논리에 입각해서 신사참배를 한 것이다.
2. 야마구치 교수는 전쟁후에 이 죄(罪)를 다 청산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죄(罪)가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 국민들에게 저지른 죄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의미하는가? 야마구치 교수 자신은 아마 신앙적인 죄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교회의 중론은 과연 그러할까?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에서 유추해 본다면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교회의 신사참배의 논리에서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는 인식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국가가 정한 것이므로, 국가에 소속된 교회의 신사참배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의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3. 이것은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근간이 되는 "와(和)”의 자연스런 발로이다. 즉 일본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 최우선이며, 이를 위해서는 각 하부기관들이 충성을 바침으로서, 일본이라는 사회가 서로 사이좋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가치관이다. 여기에 누구든지 튀어나오면 '모난 돌이 정 맞는 꼴'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 와(和)를 이루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행동이 '전체의 하나됨을 허무는 모난 돌'이 되는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당연히 힘을 가진 자들이 한다. 아무리 회의에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이해득실의 판단은 항상 그 조직을 지배하는 자들의 몫이었다.
4. 정의(justice)는 안정(security)이라는 더 우선적인 가치관에 언제나 함몰될 뿐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뿐 아니라, 사회와 교회사이에서, 그리고 교회안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암묵적 동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국가의 요청에 교단은 거부하지 않았고, 교단의 결정에 개교회나 개인은 반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의 무라하찌부(村八分)를 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조차 예수는 가야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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