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8) 가야바와 안나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4,167회 작성일 24-01-03 14:20본문
III.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
1. 여기서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Annas)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야바 뒤에는 항상 안나스가 있었고, 예수의 사형판결도 안나스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예수는 먼저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은 다음에야, 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내진다(요 18: 13).
2. 예수의 부활 후,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할 때도, “거기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참석하였다”(행 4: 6). 안나스 집안이 산헤드린 의회를 장악하고서 예수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우두머리는 안나스였다.
3. 실제로 AD 7년부터 63년까지 장장 56년 동안 안나스 집안에서 대제사장직을 독점했다. 안나스, 그의 아들, 엘르아잘, 사위 가야바,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 안나스의 아들 데오필루스, 안나스의 손자 마티아스, 그 다음에도 안나스 2세까지, 즉 59대부터 73대 까지다.
4. 특히 안나스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 2세는, 3개월 만에 헤롯 아그립바 2세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는 거만하고 무자비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불법으로 산헤드린 의회를 열어 재판하고 돌로 쳐 죽였다(고대사 20: 200). 그는 해임된 후 유대반란 때 이두매인들에게 살해당했다(전쟁사 4. 314).
5. 안나스는 어떤 인물인가? 셋의 아들 안나스(Annas, the son of Seth)으로 불린다. 그는 AD 6년, 시리아 총독 구레뇨(P. S. Quirinius)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의 대제사장 임명은 시리아 총독에게 있었다.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가 유대를 점령한 후 시리아 총독 관할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6. 구레뇨 총독은 유대 백성들이 뽑은 대제사장 요아살을 해임하고, 대신 안나스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안나스의 줄서기와 뇌물이 성공한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세사장이 된 안나스가 어떻게 대제사장직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겠는가? 권력을 독점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을까? 이로 인하여 얼마나 백성들의 고혈이 빨렸을까? 누구든지 안나스의 집안과 엮이게 되면 절대로 그의 집안의 탐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탐욕의 하수인이 되었을 것이다.
IV. 가야바는 다만 대제사장의 역할에 충실했다?
1. 표면적으로 보면, 가야바는 대제사장의 역할에 충실했고, 예수를 죽인 것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충실하게 하기 위한 업무의 하나였다.
2. 대제사장의 주된 임무는 유대교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로마를 비롯한 외세와의 세력 균형을, 내부로는 각 이해단체들을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도의 정치적 감각과 기술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했다. 참된 신앙, 회개, 갱신과 같은 개념은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사치스럽고, 어쩌면 유치한 하위 개념이었을 것이다.
3. 큰 일을 해야 하는 가야바에게 예수의 주장은 한낱 치기 어린 선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대로 두면 자신의 일에 흠집을 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는 대단히 민감한 시대였다.
4. 속을 들여다보면, 가야바는 안나스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 사두개파의 먹을 거리를 지켜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부와 힘은 성전에서 나온다. 성전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면 안 된다. 이것은 외세의 침략보다 더욱 그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V. 그들은 어떻게 강도짓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을까?
1.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처럼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목을 매달고 살았던가?"
그들의 신앙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았다. 사두개 (Sadducees) 파의 신앙은 지극히 현세적이었다. 그들은 내세와 부활을 가르치는 예수를 비웃으며 옮무를 놓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들의 무식이 탄로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눅 20: 27-40).
2.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Titus Flavius Josephus, AD 37-100)는 사두개인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두개파(the Sadducees)는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옥(Hades)의 심판과 형벌을 믿지 않았다. 바리새파는 상호간에 우의가 있었으며 공공의 복리와 단합을 위해 애를 쓴 반면에, 사두개파는 상호간에 약간의 적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같은 파 끼리의 대화도 마치 외인(外人)을 대하듯 하였다”(유대전생사 2:8).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성경을 읽지만, 내세와 심판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윤리의식과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윤리의식은 전혀 달랐다. 사후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이 굳이 양심적으로 살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죽으면 다 끝인데. 살아있는 동안 잘 먹고 살아야지.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파벌안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에게 윤리나 도덕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들이 지도하는 유대교 신앙과 예배는 과연 정상적일까?
3. 지난 2 천 년 기독교 역사에 무수히 많은 사두개인들이 등장했다. 예수를 믿지만 수단과 방법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교회일에 헌신한다. 교회의 리더십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그들의 열심과 봉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진면목을 모른다. 알아도 이내 물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의와 갱신을 부르짖는 예수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취급된다. 심지어는 제거된다.
교회안에 가야바의 무리들이 점점 많아진다. 현실에서의 보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지만 심판은 믿지 않는다. 자신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칭의교리의 안전조끼"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수학 공식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결과로 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1. 여기서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Annas)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야바 뒤에는 항상 안나스가 있었고, 예수의 사형판결도 안나스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예수는 먼저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은 다음에야, 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내진다(요 18: 13).
2. 예수의 부활 후,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할 때도, “거기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참석하였다”(행 4: 6). 안나스 집안이 산헤드린 의회를 장악하고서 예수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우두머리는 안나스였다.
3. 실제로 AD 7년부터 63년까지 장장 56년 동안 안나스 집안에서 대제사장직을 독점했다. 안나스, 그의 아들, 엘르아잘, 사위 가야바,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 안나스의 아들 데오필루스, 안나스의 손자 마티아스, 그 다음에도 안나스 2세까지, 즉 59대부터 73대 까지다.
4. 특히 안나스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 2세는, 3개월 만에 헤롯 아그립바 2세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는 거만하고 무자비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불법으로 산헤드린 의회를 열어 재판하고 돌로 쳐 죽였다(고대사 20: 200). 그는 해임된 후 유대반란 때 이두매인들에게 살해당했다(전쟁사 4. 314).
5. 안나스는 어떤 인물인가? 셋의 아들 안나스(Annas, the son of Seth)으로 불린다. 그는 AD 6년, 시리아 총독 구레뇨(P. S. Quirinius)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의 대제사장 임명은 시리아 총독에게 있었다.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가 유대를 점령한 후 시리아 총독 관할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6. 구레뇨 총독은 유대 백성들이 뽑은 대제사장 요아살을 해임하고, 대신 안나스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안나스의 줄서기와 뇌물이 성공한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세사장이 된 안나스가 어떻게 대제사장직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겠는가? 권력을 독점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을까? 이로 인하여 얼마나 백성들의 고혈이 빨렸을까? 누구든지 안나스의 집안과 엮이게 되면 절대로 그의 집안의 탐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탐욕의 하수인이 되었을 것이다.
IV. 가야바는 다만 대제사장의 역할에 충실했다?
1. 표면적으로 보면, 가야바는 대제사장의 역할에 충실했고, 예수를 죽인 것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충실하게 하기 위한 업무의 하나였다.
2. 대제사장의 주된 임무는 유대교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로마를 비롯한 외세와의 세력 균형을, 내부로는 각 이해단체들을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도의 정치적 감각과 기술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했다. 참된 신앙, 회개, 갱신과 같은 개념은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사치스럽고, 어쩌면 유치한 하위 개념이었을 것이다.
3. 큰 일을 해야 하는 가야바에게 예수의 주장은 한낱 치기 어린 선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대로 두면 자신의 일에 흠집을 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는 대단히 민감한 시대였다.
4. 속을 들여다보면, 가야바는 안나스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 사두개파의 먹을 거리를 지켜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부와 힘은 성전에서 나온다. 성전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면 안 된다. 이것은 외세의 침략보다 더욱 그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V. 그들은 어떻게 강도짓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을까?
1.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처럼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목을 매달고 살았던가?"
그들의 신앙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았다. 사두개 (Sadducees) 파의 신앙은 지극히 현세적이었다. 그들은 내세와 부활을 가르치는 예수를 비웃으며 옮무를 놓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들의 무식이 탄로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눅 20: 27-40).
2.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Titus Flavius Josephus, AD 37-100)는 사두개인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두개파(the Sadducees)는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옥(Hades)의 심판과 형벌을 믿지 않았다. 바리새파는 상호간에 우의가 있었으며 공공의 복리와 단합을 위해 애를 쓴 반면에, 사두개파는 상호간에 약간의 적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같은 파 끼리의 대화도 마치 외인(外人)을 대하듯 하였다”(유대전생사 2:8).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성경을 읽지만, 내세와 심판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윤리의식과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윤리의식은 전혀 달랐다. 사후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이 굳이 양심적으로 살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죽으면 다 끝인데. 살아있는 동안 잘 먹고 살아야지.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파벌안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에게 윤리나 도덕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들이 지도하는 유대교 신앙과 예배는 과연 정상적일까?
3. 지난 2 천 년 기독교 역사에 무수히 많은 사두개인들이 등장했다. 예수를 믿지만 수단과 방법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교회일에 헌신한다. 교회의 리더십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그들의 열심과 봉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진면목을 모른다. 알아도 이내 물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의와 갱신을 부르짖는 예수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취급된다. 심지어는 제거된다.
교회안에 가야바의 무리들이 점점 많아진다. 현실에서의 보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지만 심판은 믿지 않는다. 자신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칭의교리의 안전조끼"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수학 공식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결과로 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