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5) 가야바는 이렇게 주장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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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19회 작성일 24-01-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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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가야바의 주장: 예수는 이래서 죽어야 한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민족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시오”(요 11:50)

      이 주장은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산헤드린 70명 회원 전원의 찬성을 얻어 낸 소위 ‘가야바의 원리(Caiaphas’ Principle)' 이다. 전체가 살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 체제를 위험하게 하는 예수를 없애면 된다. 그저 고름을 짜 내듯이 예수를 짜내버리면 유대교와 국가는 아무 문제없이 유지될 수 있다.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자, 지식인, 종교인들로 구성된 산헤드린은 이런 논리를 가지고 예수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 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자는 원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도, 반대자도 없었다. 더구나 변호인은...!  그렇다면 사형에 해당하는 예수의 죄는 무엇인가?
 
 
                      II.    예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1.  가야바의 주장의 직접적인 배경을 요한복음 11장에서 찾아보자.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예수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렸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공의회를 소집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표징을 많이 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요 11: 47-50, 새번역).

    사도 요한이 기록한 위의 내용에 의하면, 예수를 죽이려는 이유가 대단히 명확하다. “예수를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할 할 것이다. 이 일을 막으려면 예수를 죽여야 한다”. 
   
  2. 예수는 반로마적 언행을 한 적이 없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반로마적 움직임을 하지 않았다. 대제사장들이라고 왜 몰랐을까?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가 반로마적 언행을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불안하게 했다. 예수 이전에도 자칭 메시야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의 군대가 출동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대의 권력구조가 로마에 의하여 바뀌었다. 이러니 대제사장들은 군중들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예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도들을 재판하던 산헤드린에서 당대의 존경받는 학자 가말리엘(Gamaliel)이 갈릴리의 유다(Judas the Galilean)가 일으킨 반란을 언급하고 있다(행 5:37). 헤롯 아켈라오가 분봉왕에서 해임되고 제네바로 추방된 다음, 유대지역은 로마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다(AD 6). 이 때 로마가 유대지역에 세금징수를 하려고 하자, 유다와 사둑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세금반대 운동을 펼쳤다. “세금을 내는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를 지키자”면서, 자기들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그들의 주장은 유대의 젊은 층에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결국 폭동으로 이어졌고, 로마 군대가 출동했다. 이 일로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만 2천 명이나 되었다(유대고대사 I, 18:1-6).

    3. 윤리적으로 어떠한 죄를 지은 적도 없는 예수지만, 그들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는 것이다. 종교인이 정치논리로 의인을 죄인으로 몰아서 죽였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유대교와 국가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가야뱌의 논리에는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


                III.  가야바는 아직도 건재하다

    1.  예수 이후  2천 년이나 지난 오늘에도 가야바의 논리는 여전히 교회를 유지하는 기둥이 되어 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이 지키려는 교회는 예수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것인가? 자기들의 이익에 부합되면 바라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주고, 손해되면 예수라도 가야바의 논리로 죽인다. 아마도 그들의 성경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괘씸죄" 이다.

    2. 지난 2천 년 동안 수 많은 예수가 가야바의 논리에 희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유지되고 번성한다.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나님의 심판인가? 아니면 알곡과 가라지를 가리기 위한 시험 기간인가? 이 질문에 대하나 해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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