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9) 가롯 유다와 예정(I)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85회 작성일 24-03-07 09:11본문
I. 가룟 유다는 지옥 가도록 예정된 자였을까?
1. 종교개혁자 칼빈(J. Calvin)은 유다가 지옥에 가도록 예정된 자였다고 말한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 열 둘을 선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비록 열 두 제자 중 하나였으나 예수님을 팔아 넘길 사람이었다”(6: 70-71).
위의 귀절을 근거로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유다를 사도의 한 사람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천국에 가도록 선택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한다(기독교강요 2, 22:7). 유다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였다는 주장이다.
2. 이렇게 되면 다음의 질문이 생긴다.
1) 첫째, 예수는 유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지옥으로 예정된 유다에게 “너도 나를 따르면 천국에 갈 것이다”는 희망을 주었다. 칼빈에 의하면,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자는 아무리 천국에 가려고 발버둥쳐도 절대로 갈 수 없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일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하나님 스스로도 바꾸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사람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할 자와 버릴 자가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가롯 유다는 지옥에 가고 싶었을까? 지옥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가, 첫째 아들은 잘 키우려는 목적으로, 둘째 아들은 죽이려는 목적으로 낳는다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의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다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마귀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까? 어불성설이다.
2) 둘째, 만일 그렇다면, 지옥 예정자 유다를 제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를 배신하는 "악역"이 그의 쓰임새였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유다를 장기판의 졸(卒)로 취급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보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민 23:19a, 참조, 딛 1:2, 히 6:18).
이렇게 되면, 유다복음서(the Gospel of Judas)의 주장과 어느 면에서는 닮은 점이 있어 보인다. 유다복음서에는 예수가 유다에게 배신을 요청하는 내용이 암시적으로 나온다(유다복음서 11:3, 19:4). 즉 유다는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1976년 이집트의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된 유다복음서는 영지주의의 주장을 담은 가짜 복음서(僞經)로 분류된다.
그래서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는 칼빈의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어 버리는 신성모독에 해당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알미니우스의 반론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 보고자 한다).
3) 셋째, 지옥 예정자를 사도(apostolos)로 선택했다면 향후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는 교회 안에서 제2, 제 3의 가룟 유다가 계속 생겨날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사도는 “예수의 권한을 위임받고 보냄을 받은 자”이다. 사도는 예수의 사후에 교회의 초석이 될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는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다음 그들을 선택했다(눅 6:12).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오늘의 목회자는 사도의 후예에 해당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롯 유다의 선택은, 예수가 세운 교회 안에 지옥 갈 예정자들이 지도자가 되어서, 유다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실제로 지난 2천 년간 교회안에는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 지옥 갈 예정자들이었다? 지금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가 지옥 갈 예정자 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3. 그러나 모든 잘못은 유다의 책임이다?
1) 칼빈은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사도의 직분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도 없으면서 사도의 직분을 감당한 것을 보면 마귀보다 더 악할 수도 있다”(기독교강요 3, 22:7). 칼빈은 왜 유다가 마귀보다 더 악하다고 했을까? 예수를 배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믿음도 없으면서 사도의 직분을 맡아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사도의 직분을 맡은 것은 유다가 예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다가 사도의 직분을 맡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한 것이 아니다.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일을 맡기고 능력을 주신 것도 예수 자신이었다. 유다가 사탄의 명을 받아서 스파이처럼 예수팀에 잠입한 것이 아니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간 것은 나중의 일이다.
4.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 사람이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롬 9: 20-22a).
칼빈은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못을 박는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 이성의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의 이해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2, 23:5). 도리어 하나님의 예정은 선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왜 선택과 버림을 예정하셨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기 때문”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칼빈의 설명이다(기독교 강요 2, 23: 7).
5. 그럴수록 질문이 더 생긴다
1) 칼빈은 자신의 이중예정론을 피력하면서 “하나님의 예정을 가지고 인간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왈가왈부하지 않으려고 해도 실제로 질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면?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실까? 인간은 인간이다. 천사도 아니고 꼭두각시 인형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사랑하시고, 이런 인간으로부터 찬양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2) 기독교 역사상 칼빈의 예정론의 공헌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것이 그의 직접적인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의 후계자들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에 대한 오해 및 오용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일일이 가릴 수는 없지만.
1. 종교개혁자 칼빈(J. Calvin)은 유다가 지옥에 가도록 예정된 자였다고 말한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 열 둘을 선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비록 열 두 제자 중 하나였으나 예수님을 팔아 넘길 사람이었다”(6: 70-71).
위의 귀절을 근거로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유다를 사도의 한 사람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천국에 가도록 선택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한다(기독교강요 2, 22:7). 유다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였다는 주장이다.
2. 이렇게 되면 다음의 질문이 생긴다.
1) 첫째, 예수는 유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지옥으로 예정된 유다에게 “너도 나를 따르면 천국에 갈 것이다”는 희망을 주었다. 칼빈에 의하면,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자는 아무리 천국에 가려고 발버둥쳐도 절대로 갈 수 없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일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하나님 스스로도 바꾸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사람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할 자와 버릴 자가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가롯 유다는 지옥에 가고 싶었을까? 지옥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가, 첫째 아들은 잘 키우려는 목적으로, 둘째 아들은 죽이려는 목적으로 낳는다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의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다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마귀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까? 어불성설이다.
2) 둘째, 만일 그렇다면, 지옥 예정자 유다를 제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를 배신하는 "악역"이 그의 쓰임새였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유다를 장기판의 졸(卒)로 취급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보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민 23:19a, 참조, 딛 1:2, 히 6:18).
이렇게 되면, 유다복음서(the Gospel of Judas)의 주장과 어느 면에서는 닮은 점이 있어 보인다. 유다복음서에는 예수가 유다에게 배신을 요청하는 내용이 암시적으로 나온다(유다복음서 11:3, 19:4). 즉 유다는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1976년 이집트의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된 유다복음서는 영지주의의 주장을 담은 가짜 복음서(僞經)로 분류된다.
그래서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는 칼빈의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어 버리는 신성모독에 해당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알미니우스의 반론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 보고자 한다).
3) 셋째, 지옥 예정자를 사도(apostolos)로 선택했다면 향후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는 교회 안에서 제2, 제 3의 가룟 유다가 계속 생겨날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사도는 “예수의 권한을 위임받고 보냄을 받은 자”이다. 사도는 예수의 사후에 교회의 초석이 될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는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다음 그들을 선택했다(눅 6:12).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오늘의 목회자는 사도의 후예에 해당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롯 유다의 선택은, 예수가 세운 교회 안에 지옥 갈 예정자들이 지도자가 되어서, 유다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실제로 지난 2천 년간 교회안에는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 지옥 갈 예정자들이었다? 지금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가 지옥 갈 예정자 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3. 그러나 모든 잘못은 유다의 책임이다?
1) 칼빈은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사도의 직분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도 없으면서 사도의 직분을 감당한 것을 보면 마귀보다 더 악할 수도 있다”(기독교강요 3, 22:7). 칼빈은 왜 유다가 마귀보다 더 악하다고 했을까? 예수를 배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믿음도 없으면서 사도의 직분을 맡아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사도의 직분을 맡은 것은 유다가 예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다가 사도의 직분을 맡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한 것이 아니다.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일을 맡기고 능력을 주신 것도 예수 자신이었다. 유다가 사탄의 명을 받아서 스파이처럼 예수팀에 잠입한 것이 아니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간 것은 나중의 일이다.
4.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 사람이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롬 9: 20-22a).
칼빈은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못을 박는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 이성의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의 이해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2, 23:5). 도리어 하나님의 예정은 선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왜 선택과 버림을 예정하셨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기 때문”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칼빈의 설명이다(기독교 강요 2, 23: 7).
5. 그럴수록 질문이 더 생긴다
1) 칼빈은 자신의 이중예정론을 피력하면서 “하나님의 예정을 가지고 인간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왈가왈부하지 않으려고 해도 실제로 질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면?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실까? 인간은 인간이다. 천사도 아니고 꼭두각시 인형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사랑하시고, 이런 인간으로부터 찬양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2) 기독교 역사상 칼빈의 예정론의 공헌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것이 그의 직접적인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의 후계자들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에 대한 오해 및 오용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일일이 가릴 수는 없지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