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8) 바울에 대한 오해(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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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757회 작성일 24-03-06 11:12본문
I. 바울은 왜 율법을 행함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강조했을까?
1.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갈 2: 15-16, 새번역)
1) 바울은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일까? 유대인 전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 크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바울의 대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울과 같은 신앙관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2) 바울이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이렇다.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부터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고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2. 바울의 대적자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1)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해야 하며(갈 6:11), 유대인의 스케줄(HaLuah HaIvri)에 따라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갈 4:9).
2) 이에 대하여 바울은 말한다. “할례를 받아야 의롭게 된다는 것은 곧 율법 전체를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할례만 지킨다고 의롭게 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율법 전체를 지키지 못하게 되는 부담만 가중시키는 일이 된다. 결국 율법의 종이 되어 버린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매고 싶은가" 라고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갈 5:1-5).
3) 회개를 대단히 강조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4 단계 회개론"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든지 4 단계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언젠가 그 주장의 추종자가 나에게도 강요했다. "교인들에게 4 단계 회개를 가르치지 않으면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들은 회개를 율법적인 행동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회개가 큰 짐이자, 자신들의 공로가 되어 버렸다. 다시 종의 멍에를 매고 허덕이고 있다.
3. 그들은 왜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는가?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갈 6:11-12, 새번역)
1) 첫째, 신앙의 박해를 피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다(살전 2: 14-16). 예수를 만나기 전 사도 바울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할례파(katatome)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도 있었다. 만일 갈라디아의 교인들이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이나 할례파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들이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박해를 피할 수 있다.
2) 둘째, 할례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대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해서 할례를 강요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율법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목적은 “우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할례를 준 사람들이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박해도 피하고, 자신들의 입지도 넓히려는 것”이었다.
4. 그들이 가르친 것은 가짜 복음이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갈라다아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여기서 갈라다아 교회는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은 로마 전역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었다.
1)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된다”(갈 2: 21). 그들은 다른 복음, 아니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갈 1:7).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갈 5: 11-12). 또는 “그들은 개들이요 악한 일꾼들이다” 며 강하게 비난한다(빌 3: 2-3).
2)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첫째, 겉치례만 일삼는 사람들을 본 받아서 형식주의적 신앙으로 바뀌어갔다. 둘째,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도 좋다는 방종주의 신앙이 유행하게 되었다(갈 5: 16-21). 셋째,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예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II. 바울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갈 4: 13-15).
1. 바울은 자신과 갈라디아 교인들의 관계를 추억하고 있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바울의 질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바울을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갖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제 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는 기프로스를 거쳐 곧 바로 갈라디아 지방, 즉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of Pisidia)을 방문했다. 가는 도중에 항구 도시 버가에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고, 바울과 바나바는 200킬로의 거리를 험산준령 고산지대를 거쳐서 안디옥에 도착했다. 나는 예전에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지나 간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 간 마가를 비난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만들었다. 원래 몸이 약한 바울이 이 때 병을 얻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고질병이 발작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이 안디옥에 도착했을 때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때 안디옥에 있던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환대해 주었을 것이다.
2. 그런데 이 추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처음으로 복음, 즉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선포했다(행 13: 39). 추종자들도 얻었지만,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도 받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행 13: 46-48). 그 뒤로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될 정도의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갈라디아 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제 2차 전도여행때 다시 이 지방의 교회들을 다시며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였다.
3. 이처럼 바울에게는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애착이 있는 갈라디아 교회가 급속하게 거짓 스승들의 가짜 복음(pseudo-gospel)에 물들어 갔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다음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갈 4:19).
III. 정리해 보자
1.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말과 상반되는 짝(opposite pair)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이것을 믿으면 실제로 우리가 용서를 받게 되고, 결과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시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 즉 율법을 아무리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의 죄사함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소용없는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바울은 결사적으로 가짜 복음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예수를 처음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예수를 몰랐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던가?
2. 여기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울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형식적이 아니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준 것이 아니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닮아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를 따라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후반부에서도 바울이 새삼 강조하고 있다.
1.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갈 2: 15-16, 새번역)
1) 바울은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일까? 유대인 전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 크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바울의 대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울과 같은 신앙관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2) 바울이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이렇다.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부터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고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2. 바울의 대적자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1)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해야 하며(갈 6:11), 유대인의 스케줄(HaLuah HaIvri)에 따라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갈 4:9).
2) 이에 대하여 바울은 말한다. “할례를 받아야 의롭게 된다는 것은 곧 율법 전체를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할례만 지킨다고 의롭게 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율법 전체를 지키지 못하게 되는 부담만 가중시키는 일이 된다. 결국 율법의 종이 되어 버린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매고 싶은가" 라고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갈 5:1-5).
3) 회개를 대단히 강조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4 단계 회개론"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든지 4 단계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언젠가 그 주장의 추종자가 나에게도 강요했다. "교인들에게 4 단계 회개를 가르치지 않으면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들은 회개를 율법적인 행동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회개가 큰 짐이자, 자신들의 공로가 되어 버렸다. 다시 종의 멍에를 매고 허덕이고 있다.
3. 그들은 왜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는가?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갈 6:11-12, 새번역)
1) 첫째, 신앙의 박해를 피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다(살전 2: 14-16). 예수를 만나기 전 사도 바울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할례파(katatome)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도 있었다. 만일 갈라디아의 교인들이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이나 할례파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들이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박해를 피할 수 있다.
2) 둘째, 할례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대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해서 할례를 강요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율법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목적은 “우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할례를 준 사람들이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박해도 피하고, 자신들의 입지도 넓히려는 것”이었다.
4. 그들이 가르친 것은 가짜 복음이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갈라다아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여기서 갈라다아 교회는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은 로마 전역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었다.
1)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된다”(갈 2: 21). 그들은 다른 복음, 아니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갈 1:7).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갈 5: 11-12). 또는 “그들은 개들이요 악한 일꾼들이다” 며 강하게 비난한다(빌 3: 2-3).
2)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첫째, 겉치례만 일삼는 사람들을 본 받아서 형식주의적 신앙으로 바뀌어갔다. 둘째,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도 좋다는 방종주의 신앙이 유행하게 되었다(갈 5: 16-21). 셋째,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예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II. 바울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갈 4: 13-15).
1. 바울은 자신과 갈라디아 교인들의 관계를 추억하고 있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바울의 질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바울을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갖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제 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는 기프로스를 거쳐 곧 바로 갈라디아 지방, 즉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of Pisidia)을 방문했다. 가는 도중에 항구 도시 버가에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고, 바울과 바나바는 200킬로의 거리를 험산준령 고산지대를 거쳐서 안디옥에 도착했다. 나는 예전에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지나 간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 간 마가를 비난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만들었다. 원래 몸이 약한 바울이 이 때 병을 얻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고질병이 발작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이 안디옥에 도착했을 때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때 안디옥에 있던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환대해 주었을 것이다.
2. 그런데 이 추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처음으로 복음, 즉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선포했다(행 13: 39). 추종자들도 얻었지만,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도 받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행 13: 46-48). 그 뒤로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될 정도의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갈라디아 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제 2차 전도여행때 다시 이 지방의 교회들을 다시며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였다.
3. 이처럼 바울에게는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애착이 있는 갈라디아 교회가 급속하게 거짓 스승들의 가짜 복음(pseudo-gospel)에 물들어 갔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다음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갈 4:19).
III. 정리해 보자
1.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말과 상반되는 짝(opposite pair)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이것을 믿으면 실제로 우리가 용서를 받게 되고, 결과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시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 즉 율법을 아무리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의 죄사함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소용없는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바울은 결사적으로 가짜 복음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예수를 처음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예수를 몰랐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던가?
2. 여기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울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형식적이 아니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준 것이 아니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닮아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를 따라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후반부에서도 바울이 새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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