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진실(1) 십자가의 강도: 이렇게나 쉽게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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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3,116회 작성일 24-02-16 19:22본문
I. 이렇게도 쉽게 구원받는가?
“그가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자, 예수는 그에게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눅 23: 42-43, 현대인).
1. 가장 악한 사람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쉽게 구원받았다. 그가 바로 십자가의 강도다. 구원 스펙트럼(spectrum)에서 본다면 순교자들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다.
2. 다음과 같은 논란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구원이 싸구려처럼 취급될 정도로.
“그는 정말로 예수를 믿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도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되겠네”.
“기독교는 참 좋겠다. 평생 나쁜 짓 했어도 마지막에 말 한마디 잘하면 구원받으니까”.
"그를 구원한 것은 정말 옳은 일이었을까?"
II. 그는 정말 예수를 믿었을까?
1. 그는 누구인가?
1) 빌라도 행전(Acts of Pilate)이라는 신약 외경(apocrypha)에 보면 그의 이름은 디스마스(Dysmas)다. 그는 함께 달린 게스타스(Gestas)와 마찬가지로 강도였다. 마태와 마가는 강도를 레스테스(λῃστής)라고 표현했다. 누가는 카쿠르고스(κακοῦργος), 즉 범죄자라고 표현했다(참고, 사 53:12). 혹자는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Zealot)원이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런데 열심당의 별명이 시카리(Sicarii)다. 짦은 단검(sica)를 품고 다니다가 갑자기 암살을 하던 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들은 반유대적 외국인들에게만 테러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려고 동족들도 암살했다. 따라서 단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음서가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 즉 그는 악한 살인자다.
2) 로마인들은 아무에게나 십자가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 가장 잔인한 형벌이면서도 번거로운 집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 시민에게는 반역이 아니면 부과하지 않는다. 이는 로마 시민의 인격을 모독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은 원래 페르시아의 형벌이었지만 로마가 주로 반란자들을 비롯한 사회 교란범들을 처형하기 위해 사용했다. 즉 십자가 처벌은 백성들에게 본때(lesson)를 보여 줄 필요가 있을 때 집행했다. 따라서 십자가 형이 확정된 디스마스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우발적으로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 죄질이 나쁜 살인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그는 그 때 예수를 믿었을까?
1) 처음에는 그도 게스타스와 함께 예수를 비난했다(마 27: 44, 막 15: 32b).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바로 앞 귀절의 내용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다. 예수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처형하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눅 23: 34).
2)디스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처형당하고 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찌 이런 의인을 비난할 수 있는가?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의 무죄를 인정했다.
다음의 말을 보면 단순한 뉘우침을 넘어 예수 앞에서 회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서 그가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자" (눅 23: 42). 즉 인생의 방향을 “당신의 나라”로 바꾸었다.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은혜를 구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붙잡은 것이다.
III. 그는 어디에 갔을까
1.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43). 예수는 주저하지도 않고 “낙원을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도장까지 찍었다, “진실로(ἀμήν, truly)”.
2. 예수가 말한 낙원(παράδεισος, paradise)은 구원 받은 자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부활하기 전의 영혼들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기 전에 머무는 영광의 나라이다. 즉 그는 구원받고 천국에 간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IV. 이러면 누가 목숨 걸고 예수 믿을까?
1. 불공평하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구원받아도 되는 걸까?"
" 베드로와 바울처럼, 고생 고생하다가 순교까지 한 사람은 무엇인가? "
"그렇다면 나는 왜 이처럼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는 걸까?"
2. 그러면서도 예수는 왜 이처럼 말했을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 16: 24-25).
구원을 얻으려면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십자가의 강도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예수는 사람에 따라서 구원의 기준을 달리 하고 있는가?
3. 사도 바울은 왜 이처럼 말했을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행 14:2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롬 8: 13).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고 그렇게 강조한 바울은 곧 바로 말을 바꾸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렇게 살았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 9:27). 그는 도대체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 을 가지고 있기나 했을까?
4.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던" 사람들, 즉 평생을 바쳐 사역을 감당하던 그들에게 예수는 말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 7: 22-23). 구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싫어하시면서. 왜 그랬을까?
5. 그래서 더욱 헷갈린다.
도대체 십자가의 강도는 왜 그렇게 쉽게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 믿었지만 마지막에 거절당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사람이 어찌 자신은 구원받지 못 할까 걱정된다고 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신앙생활 하라는 말인가?
“그가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자, 예수는 그에게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눅 23: 42-43, 현대인).
1. 가장 악한 사람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쉽게 구원받았다. 그가 바로 십자가의 강도다. 구원 스펙트럼(spectrum)에서 본다면 순교자들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다.
2. 다음과 같은 논란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구원이 싸구려처럼 취급될 정도로.
“그는 정말로 예수를 믿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도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되겠네”.
“기독교는 참 좋겠다. 평생 나쁜 짓 했어도 마지막에 말 한마디 잘하면 구원받으니까”.
"그를 구원한 것은 정말 옳은 일이었을까?"
II. 그는 정말 예수를 믿었을까?
1. 그는 누구인가?
1) 빌라도 행전(Acts of Pilate)이라는 신약 외경(apocrypha)에 보면 그의 이름은 디스마스(Dysmas)다. 그는 함께 달린 게스타스(Gestas)와 마찬가지로 강도였다. 마태와 마가는 강도를 레스테스(λῃστής)라고 표현했다. 누가는 카쿠르고스(κακοῦργος), 즉 범죄자라고 표현했다(참고, 사 53:12). 혹자는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Zealot)원이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런데 열심당의 별명이 시카리(Sicarii)다. 짦은 단검(sica)를 품고 다니다가 갑자기 암살을 하던 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들은 반유대적 외국인들에게만 테러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려고 동족들도 암살했다. 따라서 단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음서가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 즉 그는 악한 살인자다.
2) 로마인들은 아무에게나 십자가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 가장 잔인한 형벌이면서도 번거로운 집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 시민에게는 반역이 아니면 부과하지 않는다. 이는 로마 시민의 인격을 모독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은 원래 페르시아의 형벌이었지만 로마가 주로 반란자들을 비롯한 사회 교란범들을 처형하기 위해 사용했다. 즉 십자가 처벌은 백성들에게 본때(lesson)를 보여 줄 필요가 있을 때 집행했다. 따라서 십자가 형이 확정된 디스마스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우발적으로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 죄질이 나쁜 살인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그는 그 때 예수를 믿었을까?
1) 처음에는 그도 게스타스와 함께 예수를 비난했다(마 27: 44, 막 15: 32b).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바로 앞 귀절의 내용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다. 예수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처형하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눅 23: 34).
2)디스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처형당하고 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찌 이런 의인을 비난할 수 있는가?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의 무죄를 인정했다.
다음의 말을 보면 단순한 뉘우침을 넘어 예수 앞에서 회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서 그가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자" (눅 23: 42). 즉 인생의 방향을 “당신의 나라”로 바꾸었다.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은혜를 구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붙잡은 것이다.
III. 그는 어디에 갔을까
1.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43). 예수는 주저하지도 않고 “낙원을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도장까지 찍었다, “진실로(ἀμήν, truly)”.
2. 예수가 말한 낙원(παράδεισος, paradise)은 구원 받은 자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부활하기 전의 영혼들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기 전에 머무는 영광의 나라이다. 즉 그는 구원받고 천국에 간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IV. 이러면 누가 목숨 걸고 예수 믿을까?
1. 불공평하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구원받아도 되는 걸까?"
" 베드로와 바울처럼, 고생 고생하다가 순교까지 한 사람은 무엇인가? "
"그렇다면 나는 왜 이처럼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는 걸까?"
2. 그러면서도 예수는 왜 이처럼 말했을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 16: 24-25).
구원을 얻으려면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십자가의 강도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예수는 사람에 따라서 구원의 기준을 달리 하고 있는가?
3. 사도 바울은 왜 이처럼 말했을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행 14:2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롬 8: 13).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고 그렇게 강조한 바울은 곧 바로 말을 바꾸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렇게 살았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 9:27). 그는 도대체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 을 가지고 있기나 했을까?
4.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던" 사람들, 즉 평생을 바쳐 사역을 감당하던 그들에게 예수는 말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 7: 22-23). 구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싫어하시면서. 왜 그랬을까?
5. 그래서 더욱 헷갈린다.
도대체 십자가의 강도는 왜 그렇게 쉽게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 믿었지만 마지막에 거절당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사람이 어찌 자신은 구원받지 못 할까 걱정된다고 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신앙생활 하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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