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23) 교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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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942회 작성일 24-01-31 12:36본문
I. 교역자 사례비와 예수의 가르침
1. 한국교회에서 ‘부교역자 수급(需給)’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교회학교를 비롯한 부서를 맡을 부교역자가 모자란다.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들이 시골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둘째, 작은 교회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사역지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도시의 큰 교회에서는 부교역자 수급에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의 몇 가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첫째, 부교역자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둘째, 한국사회의 구조가 변했다. 셋째, 목회자의 길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넷째, 그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있다.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역시 처우, 즉 돈의 문제다. 이는 그들이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사실 이 문제는 교회가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다.
2. 예수가 베드로보다 사례비(salary)를 더 많이 받았을까?
1) 나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예수가 베드로보다 사례비를 더 많이 받았을까?” 예수팀은 주로 다른 사람들의 지원(donation)으로 운영되었다. 예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후원했다(눅 8: 2-3, 요 12: 3-6). 후원금은 공동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사용되었다(요 13: 29).
2) 그러면 공동재정으로 자신들의 생활비는 전혀 지불하지 않았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생활비를 전혀 지불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 자신부터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목수일에 전념할 수 없었고, 동생들이 예수의 생활비를 댄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제자들도 자기의 직업을 그만두고 예수팀에 합류했다(막 1: 16-20). 따라서 예수의 팀(Jesus' team of the twelve)안에서는 어떤 기준으로든 생활비가 지불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았는지, 혹은 개인후원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생활비를 지불했을까? 예수가 제일 많이 받고, 나머지의 제자들은 나이 순서대로? 제자가 된 순서대로? 아니면 가족 수를 고려했을까?
3)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문제로 다툴 때, 예수는 “첫째가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막 9: 35, 참고, 막 10: 43-44, 마 23: 11-12, 눅 22: 25-26). 누가 크냐는 다툼은 단순히 지위(地位)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위는 곧 수입과 직결된다. 따라서 예수의 원칙은 예수공동체 내에서는 '돈과 지위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4) 예수팀의 수입은 전적으로 예수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오늘의 상식으로 보면, 예수가 고용주가 되어, 제자들의 봉급을 준 다음, 나머지는 자신이 다 가져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여전히 머리 둘 곳도 없었다(마 8:20). 당장 성전 세금을 낼 돈도 없었다(마 17:27).
3. 예수는 왜 돈이 없었을까?
1) 예수팀에 들어온 후원금의 규모를 알 수 없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생각하면 아주 쪼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예수는 반세겔을 낼 돈도 없었을까? 반 세겔(half shekel)은 당시 노동자의 4 일치 일당에 해당한다. 아주 작은 돈은 아니지만 결코 큰 돈도 아니다. 오늘 날 웬만한 사람은 그 정도는 가지고 있다.
2) 예수팀의 운영경비는 어느 정도 들어갔을까? 운영비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자체 예배당도 없었고, 본부 사무실도 없었고, 타고 다니는 나귀(승용차)도 없었다. 예수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아마도 큰 교회당 건물을 물론, 화려한 마차(롤스로이스)도 타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예수팀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늘 일용할 양식(daily bread)만을 기준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즉 일용할 양식을 제외한 남은 재정은 밖으로 지출했던 것이다.
3) 예수는 단지 우리의 구원자(Savior) 만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Lord)이 되신다. 그는 스승이고, 우리는 제자다. 그분의 생각과 행동을 비롯한 모든 것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보이는 재물에 관해서도 예수의 본을 따르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현재 교회안에 통용되는 재정에 관한 상식은 예수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부교역자의 사례뿐 아니라, 재정 일반에 걸쳐 다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을 따르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최대한 창출하면서 자본가가 대부분 차지하고, 종업원들에게는 적당하게 지불하고, 나머지는 재투자 한다. 오늘의 교회는 잉여가치를 극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질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물질적 면에서도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는 소형교회에 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많이 창출하고 있다. 그렇게 생산된 잉여가치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부교역자들의 불만은 일한만큼 소득이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교회의 재정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는 별문제로 치더라도, 교회의 재정 운영이 예수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 한국교회에서 ‘부교역자 수급(需給)’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교회학교를 비롯한 부서를 맡을 부교역자가 모자란다.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들이 시골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둘째, 작은 교회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사역지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도시의 큰 교회에서는 부교역자 수급에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의 몇 가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첫째, 부교역자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둘째, 한국사회의 구조가 변했다. 셋째, 목회자의 길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넷째, 그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있다.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역시 처우, 즉 돈의 문제다. 이는 그들이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사실 이 문제는 교회가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다.
2. 예수가 베드로보다 사례비(salary)를 더 많이 받았을까?
1) 나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예수가 베드로보다 사례비를 더 많이 받았을까?” 예수팀은 주로 다른 사람들의 지원(donation)으로 운영되었다. 예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후원했다(눅 8: 2-3, 요 12: 3-6). 후원금은 공동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사용되었다(요 13: 29).
2) 그러면 공동재정으로 자신들의 생활비는 전혀 지불하지 않았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생활비를 전혀 지불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 자신부터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목수일에 전념할 수 없었고, 동생들이 예수의 생활비를 댄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제자들도 자기의 직업을 그만두고 예수팀에 합류했다(막 1: 16-20). 따라서 예수의 팀(Jesus' team of the twelve)안에서는 어떤 기준으로든 생활비가 지불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았는지, 혹은 개인후원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생활비를 지불했을까? 예수가 제일 많이 받고, 나머지의 제자들은 나이 순서대로? 제자가 된 순서대로? 아니면 가족 수를 고려했을까?
3)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문제로 다툴 때, 예수는 “첫째가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막 9: 35, 참고, 막 10: 43-44, 마 23: 11-12, 눅 22: 25-26). 누가 크냐는 다툼은 단순히 지위(地位)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위는 곧 수입과 직결된다. 따라서 예수의 원칙은 예수공동체 내에서는 '돈과 지위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4) 예수팀의 수입은 전적으로 예수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오늘의 상식으로 보면, 예수가 고용주가 되어, 제자들의 봉급을 준 다음, 나머지는 자신이 다 가져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여전히 머리 둘 곳도 없었다(마 8:20). 당장 성전 세금을 낼 돈도 없었다(마 17:27).
3. 예수는 왜 돈이 없었을까?
1) 예수팀에 들어온 후원금의 규모를 알 수 없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생각하면 아주 쪼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예수는 반세겔을 낼 돈도 없었을까? 반 세겔(half shekel)은 당시 노동자의 4 일치 일당에 해당한다. 아주 작은 돈은 아니지만 결코 큰 돈도 아니다. 오늘 날 웬만한 사람은 그 정도는 가지고 있다.
2) 예수팀의 운영경비는 어느 정도 들어갔을까? 운영비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자체 예배당도 없었고, 본부 사무실도 없었고, 타고 다니는 나귀(승용차)도 없었다. 예수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아마도 큰 교회당 건물을 물론, 화려한 마차(롤스로이스)도 타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예수팀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늘 일용할 양식(daily bread)만을 기준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즉 일용할 양식을 제외한 남은 재정은 밖으로 지출했던 것이다.
3) 예수는 단지 우리의 구원자(Savior) 만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Lord)이 되신다. 그는 스승이고, 우리는 제자다. 그분의 생각과 행동을 비롯한 모든 것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보이는 재물에 관해서도 예수의 본을 따르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현재 교회안에 통용되는 재정에 관한 상식은 예수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부교역자의 사례뿐 아니라, 재정 일반에 걸쳐 다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을 따르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최대한 창출하면서 자본가가 대부분 차지하고, 종업원들에게는 적당하게 지불하고, 나머지는 재투자 한다. 오늘의 교회는 잉여가치를 극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질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물질적 면에서도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는 소형교회에 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많이 창출하고 있다. 그렇게 생산된 잉여가치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부교역자들의 불만은 일한만큼 소득이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교회의 재정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는 별문제로 치더라도, 교회의 재정 운영이 예수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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