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야바(22) 교회의 사유화와 강도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해규 댓글 0건 조회 2,891회 작성일 24-01-30 19:41본문
I. 교회는 예수의 것이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8:18).
예수께서 “교회(εκκλησία, ekklesia)”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그 앞에 소유격 대명사, "나의(mou)"를 붙이셨다. 이것은 예수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교회는 기존의 어떠한 모임과도 다른 예수 자신의 비전과 가치관을 드러낼 교회가 될 것이며, 동시에 그 교회는 바로 예수 자신의 교회가 될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II. 교회는 민주주의 체제인가?
1.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라 교인들이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갱신의 목표가 교회의 민주화인 것처럼 보인다.
2. ‘민주주의(民主主義)’에는 두 개의 기본 특징이 있다.
1) 첫째, 주권(主權)이 백성들에게 있다. 백성들이 주인이고 백성들이 결정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지배적 정치형태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이때 백성들은 왕이 가지고 있던 국가의 주권(sovereignty)을 빼앗기 위해 수 많은 피를 흘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누구의 피로 이루어진 것일까? 사도 바울은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다(행 20:28).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고전 6: 19b-20a). 사탄의 종으로 있던 교인들을 자기의 피로 사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요 8: 36).
2) 둘째, 민주주의 국가의 목표는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전 6: 20). 교회도 교인들도 하나님의 영광이 삶의 목적이다. 교인들의 행복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질 때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의 몸이다(엡 1:21).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해야 한다(엡 3: 10). 즉 교회는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 만약 교인들이 교회를 오는 이유가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거나 인간적인 사교를 위한 것이라면, 교회가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만족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매마저 그 목적과 성격이 바뀌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배의 유일한 관객은 하나님이다. 모든 예배자는 유일한 관객이신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관객과 배우가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배우의 역할을 해야 마땅할 예배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 예배는 은혜가 있었다, 혹은 없었다". 오늘 성가대의 찬양은 좋았다, 혹은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III. 종이 주인 행세하면 강도가 된다.
1.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면 목회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종이다. 교인은? 그들도 하나님의 종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왜 목회자가 있고, 장로가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종들의 맡은 임무이다. 회의는 왜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종들의 모임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내가 세운 교회이니 내 뜻대로’ 하겠다면, 종이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요 강도다. 가야바의 길로 가는 것이다.
2. 개척한 사람은 교회를 떠나라
1) 예루살렘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사도들이 세웠는가? 아니다. 다락방 주인 마가의 집안이 세웠는가? 아니다. 예수를 키운 어머니 마리아가 세웠는가? 아니다. 예수가 세웠다. 예수는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8:18)는 말씀대로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의 뜻대로 되어야 할까? 당연히 예수의 뜻대로. 누가 주인행세를 할까? 아니다. 모두가 종일 뿐이다.
2)때가 되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서 선교지로 갔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 였다. “아니, 사도들만큼은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켰어야지!” 그들은 예수의 명령을 따라서 땅끝까지 가야 했다. 특히 성령까지 받은 마당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교회를 세울 때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다 선교지로 갔다.
3)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참으로 좋은 본을 남겼다. 교회를 세우는데 그녀만큼 공헌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모두가 자기 아들을 배신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치맛바람을 날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교회를 섬겼다(행 1:14). 때가 되자 그녀도 요한과 함께 떠났다.
IV. 사유화에 따른 문제들
1. 재정 부정
1) 교회의 재정 부정에 관한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직접적인 재정의 횡령, 납품비리, 교회사업을 빙자한 재정의 오용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들이 거룩한 교회안에서조차 근절되지 않는가?
2)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마침내 공동의회에서 어느 장로의 교회 납품에 따른 부정을 고발했다.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면서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겼는데, 수년 동안 그렇게 착복한 돈이 20억이 넘는다는 보고였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목사는 결국 그 교회를 사임했다. 평안하던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어서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장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담임목사는 피고용자(employee)였고, 그 장로는 고용자(employer)였다. 교인들이 아무리 정의를 외쳤지만 교회는 이미 그들의 것이었다.
2. 선거 부정
1. 어느 교회에서 장로 선출을 위한 투표를 했다. 장로들이 개표위원이 되어 개표를 했다. 몇몇 장로들이 개표과정에서 숫자를 조작했다. 나중에 발각되었다.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되었을까? 개표부정을 한 장로들은 '단순 실수'한 것이 되었고, 이 문제를 '크게' 다룬 목사와 몇몇 불순 분자들(?)이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2.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식으로 흘러왔던 것이다. 교회안의 사조직(私組織)에 들지 않으면 장로나 안수집사가 되기 힘들었던 것이다. 교회는 이미 그들의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더욱 문제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가? 오히려 교회의 분열만 부추기고, 전도의 문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될 텐 데... ".
3. 인사 부정
1. 교회학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교회학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앉혔다. 교사들이 건의했다. 정말로 애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해 달라고. 그러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그 건의를 묵살했다. 왜냐하면 교사들이 원하는 책임자는 자기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왜 교회의 신앙 교육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교회를 지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존재해야 교회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누가 지키는가? 그들이 지킨다. 어떻게 지키는가? 그들의 방식대로 지킨다. 다른 누구도 그 자리와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4. 선교 부정
1. 어느 교회에서 개척교회와 선교사들을 꽤 많이 돕고 있었다. 자타가 인정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돕지 않아도 될 곳에도 지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선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 아닌가? 도움을 받는 그들은 그 교회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에 있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2. 선교마저 이렇게 되는가? 그러니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열심히 충성하기 보다는 더욱 열심히 한국이나 미국을 들락거린다. 선교지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고 양육하기 보다는 무슨 연합활동, 세미나, 선교 프로젝트에 열을 올린다. 여기에 수 많은 돈과 인재, 그리고 노력을 쏟아 붙는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 구원받아야 사람들은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3.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전 로잔 신학위원회 의장)의 지적이 생각난다. “세계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종교도, 박해도, 세상의 문화도 아닌 바로 그분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상처 입히는 것은 세상의 죄악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입니다.
V. 당신들, 정말 왜 그러냐?
1.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사유화(私有化)하고 싶어한다. 교회를 개척한 사람도 그렇고, 나중에 들어 와 교회의 리더십을 차지한 사람도 그렇다.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기도하면서 스스로 믿음을 북돋운다. 묻고 싶다. 하나님을 떠난 교회를 왜 시키는가? 신앙을 포기하면서까지 교회를 왜 지키는가? 끝까지 남는 자가 교회를 차지하는가? 구원은 잃어버린 채 말이다.
2.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예수가 가르치신 신앙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는가? 등불이 켜져 있는지, 아니면 꺼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고는 있는가?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8:18).
예수께서 “교회(εκκλησία, ekklesia)”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그 앞에 소유격 대명사, "나의(mou)"를 붙이셨다. 이것은 예수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교회는 기존의 어떠한 모임과도 다른 예수 자신의 비전과 가치관을 드러낼 교회가 될 것이며, 동시에 그 교회는 바로 예수 자신의 교회가 될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II. 교회는 민주주의 체제인가?
1.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라 교인들이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갱신의 목표가 교회의 민주화인 것처럼 보인다.
2. ‘민주주의(民主主義)’에는 두 개의 기본 특징이 있다.
1) 첫째, 주권(主權)이 백성들에게 있다. 백성들이 주인이고 백성들이 결정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지배적 정치형태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이때 백성들은 왕이 가지고 있던 국가의 주권(sovereignty)을 빼앗기 위해 수 많은 피를 흘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누구의 피로 이루어진 것일까? 사도 바울은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다(행 20:28).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고전 6: 19b-20a). 사탄의 종으로 있던 교인들을 자기의 피로 사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요 8: 36).
2) 둘째, 민주주의 국가의 목표는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전 6: 20). 교회도 교인들도 하나님의 영광이 삶의 목적이다. 교인들의 행복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질 때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의 몸이다(엡 1:21).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해야 한다(엡 3: 10). 즉 교회는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 만약 교인들이 교회를 오는 이유가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거나 인간적인 사교를 위한 것이라면, 교회가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만족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매마저 그 목적과 성격이 바뀌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배의 유일한 관객은 하나님이다. 모든 예배자는 유일한 관객이신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관객과 배우가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배우의 역할을 해야 마땅할 예배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 예배는 은혜가 있었다, 혹은 없었다". 오늘 성가대의 찬양은 좋았다, 혹은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III. 종이 주인 행세하면 강도가 된다.
1.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면 목회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종이다. 교인은? 그들도 하나님의 종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왜 목회자가 있고, 장로가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종들의 맡은 임무이다. 회의는 왜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종들의 모임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내가 세운 교회이니 내 뜻대로’ 하겠다면, 종이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요 강도다. 가야바의 길로 가는 것이다.
2. 개척한 사람은 교회를 떠나라
1) 예루살렘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사도들이 세웠는가? 아니다. 다락방 주인 마가의 집안이 세웠는가? 아니다. 예수를 키운 어머니 마리아가 세웠는가? 아니다. 예수가 세웠다. 예수는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8:18)는 말씀대로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의 뜻대로 되어야 할까? 당연히 예수의 뜻대로. 누가 주인행세를 할까? 아니다. 모두가 종일 뿐이다.
2)때가 되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서 선교지로 갔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 였다. “아니, 사도들만큼은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켰어야지!” 그들은 예수의 명령을 따라서 땅끝까지 가야 했다. 특히 성령까지 받은 마당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교회를 세울 때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다 선교지로 갔다.
3)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참으로 좋은 본을 남겼다. 교회를 세우는데 그녀만큼 공헌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모두가 자기 아들을 배신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치맛바람을 날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교회를 섬겼다(행 1:14). 때가 되자 그녀도 요한과 함께 떠났다.
IV. 사유화에 따른 문제들
1. 재정 부정
1) 교회의 재정 부정에 관한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직접적인 재정의 횡령, 납품비리, 교회사업을 빙자한 재정의 오용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들이 거룩한 교회안에서조차 근절되지 않는가?
2)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마침내 공동의회에서 어느 장로의 교회 납품에 따른 부정을 고발했다.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면서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겼는데, 수년 동안 그렇게 착복한 돈이 20억이 넘는다는 보고였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목사는 결국 그 교회를 사임했다. 평안하던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어서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장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담임목사는 피고용자(employee)였고, 그 장로는 고용자(employer)였다. 교인들이 아무리 정의를 외쳤지만 교회는 이미 그들의 것이었다.
2. 선거 부정
1. 어느 교회에서 장로 선출을 위한 투표를 했다. 장로들이 개표위원이 되어 개표를 했다. 몇몇 장로들이 개표과정에서 숫자를 조작했다. 나중에 발각되었다.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되었을까? 개표부정을 한 장로들은 '단순 실수'한 것이 되었고, 이 문제를 '크게' 다룬 목사와 몇몇 불순 분자들(?)이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2.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식으로 흘러왔던 것이다. 교회안의 사조직(私組織)에 들지 않으면 장로나 안수집사가 되기 힘들었던 것이다. 교회는 이미 그들의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더욱 문제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가? 오히려 교회의 분열만 부추기고, 전도의 문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될 텐 데... ".
3. 인사 부정
1. 교회학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교회학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앉혔다. 교사들이 건의했다. 정말로 애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해 달라고. 그러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그 건의를 묵살했다. 왜냐하면 교사들이 원하는 책임자는 자기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왜 교회의 신앙 교육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교회를 지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존재해야 교회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누가 지키는가? 그들이 지킨다. 어떻게 지키는가? 그들의 방식대로 지킨다. 다른 누구도 그 자리와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4. 선교 부정
1. 어느 교회에서 개척교회와 선교사들을 꽤 많이 돕고 있었다. 자타가 인정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돕지 않아도 될 곳에도 지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선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 아닌가? 도움을 받는 그들은 그 교회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에 있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2. 선교마저 이렇게 되는가? 그러니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열심히 충성하기 보다는 더욱 열심히 한국이나 미국을 들락거린다. 선교지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고 양육하기 보다는 무슨 연합활동, 세미나, 선교 프로젝트에 열을 올린다. 여기에 수 많은 돈과 인재, 그리고 노력을 쏟아 붙는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 구원받아야 사람들은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3.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전 로잔 신학위원회 의장)의 지적이 생각난다. “세계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종교도, 박해도, 세상의 문화도 아닌 바로 그분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상처 입히는 것은 세상의 죄악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입니다.
V. 당신들, 정말 왜 그러냐?
1.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사유화(私有化)하고 싶어한다. 교회를 개척한 사람도 그렇고, 나중에 들어 와 교회의 리더십을 차지한 사람도 그렇다.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기도하면서 스스로 믿음을 북돋운다. 묻고 싶다. 하나님을 떠난 교회를 왜 시키는가? 신앙을 포기하면서까지 교회를 왜 지키는가? 끝까지 남는 자가 교회를 차지하는가? 구원은 잃어버린 채 말이다.
2.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예수가 가르치신 신앙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는가? 등불이 켜져 있는지, 아니면 꺼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고는 있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